
우리 모두에게는 이러한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사라지고 무언가 무거운 것에 눌리는 때 말입니다. 저는 주로 제가 어떤 잘못을 하거나 또는 누군가 제게 잘못을 했을 때 이런 느낌이 들곤 합니다. 당신은 언제 그러한 상태를 느끼시나요? 그리고 어떻게 그 상황에 대처 하시는지요?
용서하는 것은 저의 강점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상대방의 잘못이 생각나니 그때마다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런 일들은 왜 그리 잊혀지지 않는지요. 그 사람이 잘 한 일들을 잊는 건 쉬운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했을 때는 그 기억이 정말 오래도 지속됩니다.
나를 찌르는 가시나무
어제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 본문인 로마서 8:1-2[1]을 가지고 아이들과 말씀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그 말씀은 ‘생명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해방한다’의 영어 표현은 ‘set you free’입니다. 해방 되었다는 것은 곧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용서받음’의 경험입니다. 아마도 아빠로부터 어려서부터 잘못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이든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 제게는 믿기 힘든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머리로는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이해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정죄하고 벌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 그릇된 뿌리 깊은 믿음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을 어렵게 했습니다. 또한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도 어려웠지요. 용서받지 못하고, 아니 이미 용서를 받았음을 믿지 못하고, 또 타인과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저는 마음이 무겁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커다란 바위를 치울 방법을 알지 못해 암울하고 괴로웠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을 용서하지 못한 15년의 세월은 (물론 기쁨도 많았지만) 저의 마음에 가시나무가 자라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빠에 대한 미움과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는 저 스스로에 대한 미움을 먹고 자라난 가시나무 말입니다. 그 가시나무는 저와 식구들, 특히 저보다 힘이 없는 어린 자녀들을 찌르고 아프게 했습니다. 그것은 점점 무성해져서 저를 옥죄였습니다.
자유해지다
아빠가 천국에 가신지 15년이 지난 후에야 저는 아빠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 수업 중에 저는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저와 비슷한 가정사를 가지신 한 학생의 삶과 그분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들으면서 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은 ‘나는 너의 모든 잘못을 용서했고, 지금도 용서하고 있고, 앞으로도 용서 할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귀에 들리는 음성은 아니었으나, 마음에 들리는 강한 확신이었습니다. 그 순간 길지 않은 세월 동안 제게 여러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용서했고, 저에게 부당하게 어려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었던 아빠를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그 용서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미움은 눈이 녹듯이 스르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렇게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용서를 깊이 경험한 저는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저의 세 자녀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저에게 더이상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무어라 말하지 않았지만, 편안해지고 사랑으로 빛나는 달라진 저의 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안도감과 호기심과 기쁨과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엉켜서 이리저리 굴러 다니다 못해, 무성해지면서 저를 옭아 매던 ‘미움’과 커다란 바위처럼 저의 마음을 짓눌렀던 ‘용서 없음’의 삶에서 벗어난 저는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머리와 온 몸에 베여 있던 스트레스와 긴장이 녹아졌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 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책에서 벗어나 저의 부족한 모습까지 감싸 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노력으로 되지 않았던 초자연적인 일이었습니다.
가시나무에 피어나는 꽃
물론 그 후로 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거머리 같이 제게 달라 붙어 뗄 수 없었던 죄책감과 부끄러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났지만, 저의 오래된 잘못된 습관들과 이로 인해 생기는 갈등들은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그 전과 같이 저보다 약하고 힘이 없는 자녀들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주고 이해 하는 것이 어려웠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에도 꽃이 피듯이 저의 삶 속에도 긍정적인 변화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용서의 은혜에 뿌리를 내리고,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성장의 도구를 발견하고 실천하며 성장해갔습니다. 감사하게도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로이 갈등을 풀 수 있는 방법을 <비폭력 대화>라는 책을 통해 접하게 되면서 저 스스로도, 그리고 저희 가정에도 꽃이 더욱 아름답고 무성하게 피게 되었습니다. 그 변화는 느리지만 강력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저의 고질적인 나쁜 버릇들이 고쳐지기 힘들더라도, 또 제게 비폭력 대화를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지금껏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적이고 절대적인 용서함을 받은 경험은 저에게 소중한 삶의 자원이 되어주었습니다. 자타를 억압하고 억누르던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습니다.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자책과 비난에서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더이상 상처 받지 않으려고 딱딱하게 굳어 가던 마음의 벽에 창을 내주어, 부인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밝은 빛이 저를 비추도록 해주었습니다. 제가 그 창을 다시 막아버리지 않는 한, 저는 언제든지 그 빛에 감싸여 안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밝고 희망찬 미래를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용서받음의 기억이 있으신지요? 그 사건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요?
이 글은 다음주에 이어 연재됩니다.
[1] 로마서 8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오늘은 장한이님이 부르신 ‘가시나무’를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