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만들어 준 음식보다
동생들이 만들어준 음식을 훨씬 더 그리워 합니다.
아직 어리지만 둘째, 특히 셋째의 음식 솜씨는 정말 뛰어납니다.
저희 아이들이 만든 음식이 특별히 맛있는 이유는
아마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만든 음식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해준 음식을 먹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Photo by Joshua Jung
당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고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쓸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당신의 자존감은 안녕하신가요?
억지 희생의 결과
20대 초반 또래들은 한참 자신의 꿈을 펼치며 살아가고 있을 무렵, 저는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을 했고, 말도 음식도 문화도 낯선 땅으로 날아왔습니다. 결혼 후 줄곧 전업주부로 살아 오면서 사실 저의 자존감은 점점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결혼생활은 불만족스러워져 갔고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아주 조금씩 이었지만 제게서 멀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게 있는 것을 다 쏟아냈으나 채워지지 않는 삶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처절함으로 보답했습니다. 책을 읽어도 저의 영혼을 위로하고 살찌우기 위한 것 보다는 양육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시간과 노력은 제 삶의 1순위 였던 가족, 교회, 그리고 주위의 몇몇 지인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가부장적인 사회의 한 희생자로 인식했고, 이 시대적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곤 의무감에 의해 희생을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이니까 ~를 해야만 한다,’ ‘나는 아내이니까 ~를 포기 해야한다,’ ‘나는 며느리이니까 ~게 행동 해야한다’는 생각은 저의 기쁨을 앗아갔습니다. 아이들이 제가 원하던 대로 아무리 바르게 자라도 그것은 제게 충족감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자기 계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제게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음식을 하고 집을 가꾸는 가사일은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요리와 가사 노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사회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저의 가치를 평가 절하 했습니다. 사회와 주변 사람들의 잣대에 맞추어 제 자신을 초라한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자발성과 기쁨에 의한 섬김이나 희생이 아니었기에, 가까이서 저를 바라보고 살을 부딪히는 가족들 또한 만족감과 감사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족들이 그렇게 제가 공들여 맛있게 만든 음식에 매일같이 불평을 한 이유도, 아이들 사이에 그렇게 다툼이 많았던 이유도 제 마음에 가득 했던 불만족과 불평이 씨가 되어 맺은 열매였던 것 같습니다.
나를 살리는 베풂
이렇게 자타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희생은 저의 마음을 가난하고 황폐하게 했습니다. 반면 저의 강점을 살려 자발적으로 한 베풂은 저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저의 낮아진 자존감을 세워 주었습니다. 말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시지만 저의 글을 수행을 하는 마음으로 읽고 애독하시며 ‘선교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시는 든든한 후원자이십니다.[1]
우리는 백인이 97% 이상인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어린 자녀 셋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가정에서 불화를 경험하고 계셨고 시댁의 모진 구박에 힘겨워하고 계셨습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한인 사회와 거리를 두고 계셨기 때문에 그분의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위로해 드릴 분이 없었습니다.
저는 맛있는 음식을 하면 종종 그분 가정에 나누었고 그분 또한 귀한 음식과 직접 기른 농산물들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가끔씩 만나 남편들 흉도 보고, 깔깔 거리며 웃기도 하고, 서로의 힘든 점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에게 결혼의 위기가 심각하게 찾아왔습니다. 너무 아파 하셔서 소망이 끊어지고 자신의 모든 권리까지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평상시에도 제 말씀을 하기 보다는 그분의 말씀을 들어드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때는 더욱 집중적인 공감과 위로의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예쁘지만 어두운 그분 댁이 아닌 밝은 저희 집으로 그분을 초대했습니다. 아이들을 등교 시키고 따뜻한 밥상을 차렸습니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 우리는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랜 세월 시댁의 거칠고 가시 밖힌 말들로 난도질 당한 마음을 다독여 드리고, 부당하고 치욕적인 대우로 사그러든 자존감을 세워 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혼할 경우에 혼자서 살아갈 여건을 조성하시도록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함께 논의했습니다. 이후에도 몇 번을 만남을 더 가졌습니다. 상담가를 연결시켜 드렸고, 우울하고 외로운 환경에서 벗어나도록 직업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분에게 지금까지 몇 번의 각기 다른 큰 어려움들이 찾아 왔지만,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시면서 삶의 의미를 찾으셨기에, 홀로 당당히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게다가 그 모진 아픔을 뒤로 하고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봐 드리는,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용서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비록 그분은 그 어려운 시간을 함께한 저를 너무나 고마운 존재로 생각 하시지만, 그 베풂의 과정은 저의 삶의 방향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한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게는 타인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있었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경청하는 능력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저의 사명으로 연결하는 과정은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와 너를 세우는 이타성 – 긍정도구 3. 베풂
지난 주 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타성을 심어 주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타성이란 무엇일까요? 긍정심리치료에서 말하는 이타성은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남에게 득이 되는 물질이나 시간 또는 재능을 베푸는 행위입니다. 그 베풂은 상대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받을 수 있는 베풂이어야 합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주는 행위는 진정한 이타성에서 나온 베풂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이타적인 베풂은 그 수혜자가 명시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나눔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베풂을 받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열린 자세를 유지할 때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베풂이 됩니다.[2]
저는 스스로가 ‘나는 엄마이니까,’ ‘나는 아내이니까’ 라는 의무감으로 몸과 마음이 무거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녀들에게 ‘너는 내 딸이니까’ ‘너는 내 아들이니까’ 라는 이유로 ‘~해야한다’는 것을 강요하고, 제가 주는 음식은 건강상의 이유로 선택의 기회도 없이 무조건 먹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억지 희생과 헌신의 논리는, 그것을 받는 이들에게서 ‘그 섬김을 받을 지, 받지 않을 지’ 선택할 자율성을 빼앗는 논리를 정당화 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이지요.
‘나는 엄마니까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와지고,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세운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저와 저희 가정의 삶은 이전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저는 엄마니까 꼭 해야만 했던 음식 만들기와 살림살이에서 어느 정도 제 자신을 구원해 내었습니다. 그 과정은 길었고, 음식이 예전처럼 다양하거나 맛깔나지 않아도, 집이 예전처럼 깨끗하지 않아도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그저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제 옆에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제가 씌웠던 강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100% 완전한 자유를 주었냐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의 바운더리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부모이기에 강압적으로 자녀들의 모든 일을 통제하고 지시하던 암흑의 역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제게 ‘당신은 OOO이니까 ~를 해야 한다 (You are supposed to ~.)라고 강요할 때, 그것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겼습니다.
나가는 말
누군가 당신으로 인해
행복을 느낀다면…
누군가 당신으로 인해
희망을 노래한다면…
누군가 당신으로 인해
기쁨에 겨워 춤을 춘다면…
당신의 가슴은 무엇으로 가득찰 것 같으십니까?
당신은 아마도
그 어디서도 얻지 못했던
그 누구도 주지 않았던
기쁨과 만족감과 뿌듯함과 감사와 행복감과 환희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자기 효능감이 높아지며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것입니다.
행복은 당신의 가슴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깊은 우물에서 행복을 길러내 보세요.
그 우물에서 행복을 길러 낼 힘도 당신께 이미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을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니까요.
당신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베풂을 나누시겠습니까?
P.S.
오늘은 당신을 자발적인 베풂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만일 당신께서 누군가를 돕고 싶어 적절한 기회를 찾고 계셨다면 한번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어떤 의무가 아니니 자유롭게 선택하시면 됩니다.
월드비전에서 하는 제 3세계 국가에 우물 파주기 운동에 올 해로 4번째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Global 6K for Water (나의 걸음이 깨끗한 물이 되는 기적)는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들을 살렸습니다. 이번에는 팀 이름이 ‘떡볶기’입니다. 딸 아이가 떡볶기를 좋아하는데, 달리기를 마친 후에 다같이 떡볶기를 먹으며 따뜻한 한국의 사랑을 나눌까 합니다.
5살 이하의 어린이가
오염된 물과 비위생적인 환경에 의해 발생한 설사로
매일 800명 이상 죽어갑니다.
게다가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물을 긷기 위해 걸어야 하는 거리는
하루 평균 6 킬로미터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 부족과 위생문제가
우리 시대에 끝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월드비전)
5불이라도 작은 기부를 해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작은 정성이 하나하나 모아지면 큰 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깨끗한 물은 생명입니다.
[1] 그분께서 몇 해 전에, 제가 여쭙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나중에 예시로 사용해도 된다 하셨기에 그분과의 소중한 인연을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2] <긍정심리치료 치료자 매뉴얼> 마틴 셀리그만 & 테이얍 라시드, p.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