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된 삶으로의 첫 걸음: 내 삶의 주도권 찾기

당신의 눈이 어디에 머무는 가는 당신의 책임이다.
그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느낌을 갖느냐 또한 당신의 책임이다.

Photo by Joshua Jung

     우리 주변에는 멋진 사람들이 참 많다. 선하신 하늘 아버지를 닮아 세상에 빛이 되는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유명한 음악가도 있고 대대로 성공한 사업가도 있다. 양식과 교육,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여 세계 곳곳의 가난한 자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는 사업가들도 책과 유투브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어느 한 분야 또는 여러 분야에 있어 성공하여 명성이 높다. 세상에 영향력이 있지만, 눈을 높은 곳에 두지 않는다. 그들은 가진 것을 자신의 필요를 채우면서도 이웃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서 지혜롭게 사용한다. 그들은 리더십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과 협력하여 큰 일을 이루어 낸다. 그들의 인성은 훌륭하며, 영성과 지성과 관계성도 탁월하다. 사회에서도 인정 받지만 그들의 존재는 가정 안에서도 빛난다. 정말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딱이다.

1.  내가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린 이유

    ‘나도 그렇게 멋지게 살고 싶은데……’ 그러나 본인의 실상을 그들과 비교해보니 상대적으로 너무 초라해 보인다. ‘아…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구나…’ 안팎으로 부족한 필자의 모습을 직면하며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에 빠졌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필자의 꿈을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심이 올라오기도 한다. ‘내 IQ가 좋았더라면…… 우리 집이 부자였더라면…… 그 때 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한탄해도 지나간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고 억울하다. 공연히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네가 이런 잘못을 해서… 네가 이렇게 하지 않아서…”하며 불행의 탓을 돌린다.

     필자의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순간들이 많다. 변화가 일어나길 간절히 원했지만 환경을 탓하고 주위 사람을 탓할 뿐, 본인이 변해야 그것이 가능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고는 그 상황과 사람들이 필자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은근히 믿었다. 필자의 꿈은 닿을듯 하지만 아무리 다가가도 여전히 저만치에 드리워 있는 무지개 같았다. 그렇게 본인의 책임을 거부했던 시간만큼 아쉬움과, 절망과 분노의 감정이 쌓이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정리하자면 필자가 때때로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린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경쟁과 비교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필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2.  감정까지 내 책임이라고?

     어느 순간 스스로의 생각, 행동, 말, 결정들, 처한 환경, 그리고 감정까지 필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으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느낌이 내 책임이라니? 말도 안 돼!!!’ “감정에 대한 책임이 각자에게 있다” 는 로젠버그 박사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필자가 보인 반응이다. ‘분명히 저 사람이 나를 공격 했으니 내가 화가 나는게 당연하지! 100%는 아니어도 저 사람 잘못이 훨씬 커! 나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가슴을 찌르는 말을 했는데!’하고 속으로 반박했다. 다른건 다 내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감정만큼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그래도 필자가 잘한 것이 하나 있다면, 비폭력 대화 (평화로운 대화)를 가정 안에서 아이들과 간간이 실천해 온 것이다. 서툴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는 모토 하나로 지금껏 왔다. 그러면서 한가지 배운 점은 ‘감정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필자는 아이가 셋이다.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막내는 타고난 음악가이다. 그 아이는 영아기때부터 박자에 맞추어 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한다. 밥상에 앉으면 수저와 포크로 밥상을 두드려서 그 아이의 밥상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그렇게 막내에게는 모든 도구가 드럼과 드럼 스틱이 되었다.

     좀 더 자라자 비트박스를 하기 시작했고, 아이는 넘치는 에너지를 여러가지 소리로 발산했다. 누군가 즉흥랩을 시작하면 그에 맞추어 멋진 비트박스로 응답했다. 이런 막내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고 흥이 절로 났다. 하지만 종종 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한 영혼이 있었다. 그 영혼은 ‘막내가 내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귀찮고 짜증이 났던 것이다. 같은 조건과 환경에 있었는데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아마 사춘기를 지나는 시기여서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제서야 감정은 본인이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즉, 감정은 상대방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각 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선택함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3. 감정을 책임질 때 일어나는 변화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필자의 집은 사방으로 마당이 넓은데, 지역 특성상 우기가 길어 집의 지붕과 나무들이 온통 이끼로 가득하다. 처음 이곳에 이사왔을 때의 충격이란… 그 넓은 마당이 온갖 잡초와 블랙베리(복분자) 덩쿨로 가득차 있었다. 누가 봐도 버려진 집이었다. ‘이렇게 엉망인 곳을 어떻게 관리하지? 사람들이 이 마당을 보고 우리를 게으르고 한심하다고 생각 할텐데…’ 필자가 먼젓번에 살던 집은 가꾸어야 할 마당도 화단도 상대적으로 상당히 작은 크기였지만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첫눈에 이런 걱정이 불쑥 들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어디 싸게 내놓은 밭가는 기계가 있나? 흙을 갈아 엎고 꽃씨를 뿌려볼까?’ 이것저것 알아보고 아이들과 가시 넝쿨을 치워도 끝이 안 보인다. 이건 장정 10여명이 달려들어 한달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신을 다해 일해도 끝나지 않을 일이었다.

     여러 감정이 솟구쳤다. 당황스럽고, 실망되고, 창피하고, 한심하고, 답답하고, 막막하고, 걱정되고, 불만스럽고, 허망하고, 억울하고, 귀찮고, 좌절되고, 끔찍하고 짜증도 났다. 이만하면 필자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독자도 짐작하시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가시에 찔려가며 잘라낸 블랙베리 넝쿨은 한 해가 지나자 다시 자라났다. 그러고는 우리가 땀흘린 노력이 무색하게 집 주변 곳곳을 금세 덮어버렸다. 어차피 해도 안 되는 일이었다! 큰 기계로 땅을 갈아 엎고 덩굴을 뿌리채 뽑아내지 않는 한 마당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은 우리의 한계를 넘는 일이었다. 게다가 높은 값을 주고 땅을 한번 갈아 엎는다 해도 사후 관리를 우리 다섯 식구가 감당해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래! 그냥 감사하자! 헛간과 나무들까지 덮어버린 블랙베리 넝쿨은 맛있고 영양가 있는 과실을 주니 감사하다! 뒷뜰을 가득 덮은 이끼는 걸을 때 푹신푹신한 쿠션을 제공하니 감사하다! 돌밭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자라는 풀들 또한 노란색, 하얀색, 보라색 꽃들을 예쁘게 피우니 감사하다! 앞마당의 자갈은 발바닥을 지압해주는 효과가 있으니 감사하다!’ 생각을 고쳐 먹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다. 다시금 염려와 스트레스가 올라오면 마음을 다잡고 ‘감사합니다’를 시작했다. 시선을 돌려 이미 누리고 있는 더 많은 축복에 주목했다.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는 없었다. 다른 집으로 이사할 수도 없었고,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우리가 가진 옵션이 아니었다. 다만 필자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선택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도록 노력했다. 그중 하나가 필자의 감정을 스스로 책임을 지고 개선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필자의 감정은 필자가 온전히 주도권을 갖고 선택할 수 있었고, 노력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미 받은 축복이지만 깨닫지 못했던 것을 찾아 제대로 누리며 감사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자 갖지 못한 것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을 때 잃었던 평정심이 필자에게 다시 돌아왔다. 이렇게 상황은 변함이 없었지만 상황을 받아들이는 필자의 태도가 달라지니 감정 또한 자연스레 달라졌다.

    이제는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그 널부러진 풀들과 가시넝쿨들이 예전만큼 버거워 보이지 않는다. 마당을 빙글빙글 걸을 때  ‘딱딱한 아스팔트가 아닌 푹신한 땅을 걸어서 무릎이 안 아프니 감사합니다!’하고 진심어린 감사와 기쁨의 감정이 솟아난다. 봄이면 피어나는 들꽃들도 참 귀하고 어여쁘게 보인다. 어떤 날은 걷기 운동을 잠시 중단하고 풀밭에 쭈그리고 앉아 꽃들을 감상하기도 한다. 이번 겨울을 지나면 다시 풀을 깎아야 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하겠지만, 봄꽃들을 볼 생각에 기대감이 올라온다. 실제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풀과 넝쿨도 아이들이 사진을 찍을 때 멋진 배경이 되어주니 감사하다 (물론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주변을 흐릿하게 처리해 주는 렌즈가 있어야 한다). 독자 또한 필자와 유사한 경험들이 있지 않은가? 기억을 잘 더듬어 보길 권한다.

4. 선택하는 자유인,  선택한 것을 실현해 내는 능력자 

     모든 인간은 자신의 부모나 보호자 그리고 교사 등에게서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느냐는 분명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기가 뱃속에 잉태되면서부터 전적으로 부모를 의지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아직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주변의 성인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를 관찰하며 그것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어느새 자신도 부모와 같이 믿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벌써 막내까지 모두 10대 들이지만 세 아이의 엄마로서 필자의 영향력과 책임감이 아직도 크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사고력, 판단력, 결정력, 실행력 등이 성장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들을 더 많이 갖게 된다.  그에 따라 아이가 갖는 책임감도 늘어난다. 아이는 점점 자신만의 세계관, 신념, 삶의 형태 등을 형성해 가려고 노력한다. 때가되면 그동안 부모나 선생님이나 사회가 그들에게 주입시켜준 것들에서  자신을 잠시 떼어 놓고 그것이 과연 진리인지, 자신을 아름답게 하고 용감하고 지혜롭게 할만한 것들이었는지를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언어생활, 습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등 우리의 의식적인 지각이나 노력없이, 익숙해진 삶의 방식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동안 잘못 길들여진 모든 것들을 거부하며,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스스로의 믿음과 삶을 발전시켜야 한다. 

     아무리 성인이라 하더라도 어떤 환경, 또는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우리의 특정한 감정을 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좌지우지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스스로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의 예시처럼 생각을 선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의 감정까지 조절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 살고 있지만,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결정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그 안의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창조물을 다스리는 엄청난 권한과 지혜 주셨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선물로 주셨다. 우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포함해, 우리의 관계성과 환경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결정권을 맡겨 주셨다. 그리고 결정하고 실행한 대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믿고 노력한대로 열매 맺는 삶을 허락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택에 따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부정직하고 남을 해하는 일을 하면 결국은 자신이 그 일로 망하게 된다. 타인의 삶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심으면, 우리의 삶 속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 좋은 것에 시선을 두고, 거듭거듭 묵상하는 사람은 그 생각하는 것이 삶속에서 이루어진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둔다. 즉 우리에게는 심판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로운 선택들을 하길 원하시고 그 결과로 모든 면에서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원하신다. 이 땅을 떠나 영원으로 옮겨간 후부터 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에서부터 하늘의 축복을 누리길 원하신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 모두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있으시다. 그렇기에 우리가 경쟁의 논리가 아닌 축복의 논리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어릴 적에 깨달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라도 알게되어,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5. 책임 회피의 결과 VS. 주도권 시행의 결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갖으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의해 우리의 삶이 100% 결정되어 진다는 단순하고도 무책임한 믿음도 경계해야 한다. 필자는 은연중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없고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었었다. 그런 믿음 아래 필자의 감정은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상대방의 마음 상태에 따라 필자의 태도가 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자신의 감정 뿐만 아니라,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가 행복해지려면 ‘내 남편이, 내 아이들이, 내 친구가 이렇게 저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부족한 것은 ‘더 부족한 당신 탓’이었다. 필자의 발전을 저해하는 ‘환경 탓’이었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께 “당신이 주신 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습니다.”하고 엉뚱한 핑계를 대며, 결국은 하나님께 책임을 돌린 아담과 다를 바가 없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스스로 변하기까지 누구도 필자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바꾸지 않았다. 희망이 없어 보였고, 어려움이 생겼을 때 쉽게 좌절했다. 상황이 변하지 않을 때는 몇일이고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도 했다. 필자는 ‘나는 현재보다 더 멋진 삶을 살 능력도 그것을 선택할 권한도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가끔씩 찾아오는 지옥같은 현실과 암울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누군가 구출해 주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었다. ‘제발 날 이 지옥에서 꺼내달란 말이예요’하고 흐느껴 운적도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스스로의 상황을 개선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도,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위기와 고난을 기회로 선용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자녀로써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엄청난 능력이 이미 잠재되어 있다는 것도 선명히 깨닫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결과였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는 1) 자신이 옳은 결정을 내리고,  2) 창조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꿈꾸며, 3)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집중해서,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대로 4) 자신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5)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축복의 통로로 세워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 하셨고, 이미 구원을 베푸셨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믿기를 거부하고 우리의 삶을 그분의 뜻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그 축복의 약속을 현재의 삶 속에서 누리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대로, 우리가 믿고 행동하는 대로 우리는 변화를 일으킨다. 장차 올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삶의 현장 또한 달라진다. 

    필자는 오늘도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의 뜻과 섭리가운데 머물면서 즉, 우리의 안전한 바운더리가 되는 진리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선택의 자유를 사용해 그 말씀을 필자의 삶 속에서 책임감 있게 실천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요즘 필자는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지난 달과 이번 달이 달라지는 시간을 살고 있다. 필자의 잘못된 신념과 선택과 결과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하나 하나 바꾸어 나가니, 꾸준히 작고 큰 성장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내년에는 어떤 모습일지, 5년 후에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너무나 기대가 된다! 필자에 대한 가족의 평가도 더욱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필자가 하는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며, 자신들의 삶의 변화를 촉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커져간다. 원래 가장 날카롭고 정확한 평가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나오지 않는가? 

     물론 홀로코스트 같이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타개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들이 있기도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은 죽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인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 그들은 정신적 그리고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처한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생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필자의 글에 설득력을 더하는 증언들을 남겼다. 또 어떤 이들은 그 안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인간의 존엄성과 고결함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 삶에 전적인 책임을 질때 우리는 이렇게 한계를 뛰어넘는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다. 정말 신기하고도 멋진 일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당신이 처한 환경과 조건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반응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당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옳은 선택들을 내릴 수 있고, 그 선택과 실천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  세상에 더욱 아름답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필자도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딛으며 성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아직도 과거의 필자와 같이 비교와 경쟁이라는 세상의 논리를 믿고 있다고 해도,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으로 힘겨워 하고 있더라도 늦지 않았다. 필자도 여전히 이 거짓된 논리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기 위해서 때때로 책임과 축복의 논리를 상기 시키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부터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부여하신 권리와 능력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주시며, 그것을 이루도록 필요한 모든 지혜와 능력을 아낌없이 주시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은 한이 없다. 예측할 수 없고 기이한 방법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보다 더 넘치는 응답을 주신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우리의 소망의 이유이다. 당신도 필자와 함께 이 길을 걷기를, 그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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