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운 사람들을 발굴해 학교 공동체에 알리며
그들의 공로에 감사하고 성과를 인정하는 매거진입니다.
세상에 이런 대중매체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Photo by Joshua Jung
한국은 참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과 부를 이루었습니다.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며 활약하는 다양한 인재들도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자살률도 세계 최고가 되었습니다. 범죄의 방법도 더 잔인해지고 있고, 범죄율도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도에 286,615였던 범죄 건수가 2020에는 434,698로 증가되었습니다.[1] 우울증[2], 공황장애[3], 사회공포증[4] 같은 심리적 또는 정신적 건강 장애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가정의 파괴와 경제적 압박도 증가했겠지요.
행복하지 않은 생일
한국 사회에 팽배해진 억울함과 분노…… 그것은 제 삶에도 종종 찾아오는 단어들 이었습니다. 부부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남편은 나가서 일을 하며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저는 혼자 집에 남아 억울하고 불쾌한 감정을 곱씹으며 더 크게 키워갔습니다. 그 어두움은 몇일이고 저의 생각 속에 맴돌았고, 머릿속에는 꼬이고 꼬여 도무지 풀 수 없는 커다란 실타래로 가득 차 있는 듯 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습니다.
불평과 비난 또한 저에게 친숙한 단어들 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 보아도 주위를 둘러 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높은 잣대를 세우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못마땅해 했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잘못은 물론이고, 작은 실수 하나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물론 저는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것이 부모의 마땅한 본분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저보다 힘이 세거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속으로 삭힐 뿐이었지요. 저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저의 마음은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의 모습에 실망되었고, 아이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모습과, 믿음과 행실이 일치하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사실에,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괴로웠습니다.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들과 저의 미래가 비참해질 것 같아 걱정되고 두려웠습니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는 것을 보며 가끔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린 자녀들이 사랑스럽게 노래를 하며 저의 생일을 축하해 주어도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축복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주저 앉는 것인가
어린 아이들 셋을 키우며 제 몸은 약해져 있었습니다. 주위에 저를 도와줄 가족이나 친척이 전혀 없었던 데다가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혼자서 집안 살림과 육아를 감당하는 것이 제게 상당히 버거웠습니다. 그래도 식구들이 아직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까지 집에서 살림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도우며 사회에 공헌하는 전문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남편과 친분이 있는 어느 작은 학교의 부학장님이 저를 받아 주셨고, 미국에 10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토플 점수도 내지 않고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2년 정도 학교를 다니다가 미국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에 있는 그리스도 병원 The Christ Hospital에서 학생 채플린으로 몇 개월간 섬기게 되었습니다. 병원 채플린 프로그램이 저희 학교 커리큘럼 중 하나인 덕분이었습니다. 다른 학생 채플린들과 함께 공부하며 환자들의 애환을 위로하는 일은 제게 참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영어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경청이 주된 임무였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던 저는 대학원 졸업 후 병원 채플린이 되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채플린 레지던트에 지원을 하자 저를 받아 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저보다 영어에 능통하고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준비된 인재들이 미국 전역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고 학교를 졸업한지 4년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저를 아끼시던 교수님들도 하나 둘 은퇴하시거나 돌아가셨고, 영어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내세울만한 경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회에서 낙오자였습니다.
이렇게 다시 도태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몰려왔고 패배감으로 마음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의 주름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름살은 웃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지은 화난 표정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의 병이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명의 자녀들은 중고등 학생이 되었는데도 사소한 일로 종종 다투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의 병이 자녀들 간의 관계에서도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패배자에서 성장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했습니다. 병든 모습 이대로, 부정적인 생각과 우울한 감정 상태를 더 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 권의 책도 읽었지만,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리고 집안 일이 많아서, 독서 대신 주로 유투브 방송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어떻게 했는지, 좋은 관계성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말을 하는지, 행복한 사람들의 비결은 무엇인지 마구잡이로 듣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컨텐츠를 무료로 나누는 착한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기록하고, 하나씩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유투브 알고리즘 때문에 저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영상들을 계속해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광고를 통해서 성공한 사업가 부부가 만든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저의 생각과 생활의 패턴을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저의 인생을 깊이 성찰했고, 인생의 방향성을 새롭게 했으며, 꿈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채플린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저에게 집중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몸에 새긴 성공 습관들
저는 그들이 말해주는 성공 습관들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성공 습관들은 뭐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그날 받을 축복을 감사하기, 매일 충분한 양의 물을 제때 나누어 마시기, 깊은 호흡을 하며 기도 하기, 긍정 확언 무한반복 듣기, 하루의 일과를 계획하고 반성하기,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기, 감사 일기 쓰기 등이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별것도 아닌 그 실천들이 몸에 베여서 습관이 되면 인생이 바뀐다고 하니 한번 해볼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인지라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도 더 열심히 했습니다. 사랑과 진리의 말씀은 저에게 나침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한 변화와 성장이 느리게 나타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생각하며 낙심될 때, 저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습니다. 성경에 언급된 대성한 인물들에게는 하나 같이 고난과 좌절이 지속되는 연단의 긴 시기가 있음을 새롭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계발을 하면서 말씀을 읽으니 그 말씀의 의미들이 더 깊고 폭 넓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생각과 감정과 말과 행동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그렇다고 위의 습관들을 하루 아침에 모두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을 여유롭게 갖고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몇 개씩 묶어서 습관을 들여 갔습니다. 오늘 성공하면 감사했고, 실패하면 ‘내일 하면 되지’하고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시도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몇일이고 실패한 날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모토 하나로 밀고 나갔습니다.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도움이 되는 책과 영상들을 꾸준히 참고했습니다.
감사가 나를 살리다
그 중에 저를 제일 많이 변화시킨 것은 ‘감사하기’입니다. 감사하기는 일기쓰기, ‘감사합니다’하고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중얼거리기, 가족들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한 일 나누기로 실천했습니다. 계획한 것을 꾸준히 해내는 습관이 전혀 없던 저에게 꾸준히 감사 일기를 쓰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감사한 것 세가지를 생각해 내는데도 시간이 어찌나 오래 걸리던지요. 워낙에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던 습관이 있던지라, 긍정적인 경험을 떠올리고 감사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과연 크리스천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서 그제서야 왜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게 감사일기를 쓰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점차적으로 저의 생각과 감정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 자신과 다른 사람의 단점, 실수, 잘못에 집중하고 그것들을 곱씹던 습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던 잔소리도 점점 줄었습니다. 대신에 제 눈에는 저와 아이들의 멋진 모습, 장점, 성공들이 더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존재 자체 그리고 아이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하는 표현이 늘어났습니다. 늘 불평하고 불만이었던 주변 환경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몸과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제 마음이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지니, 세상에는 감사한 것이 참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제가 이미 누리고 있던 축복들이었습니다. 다시금 예전의 불평하던 습관이 불쑥 나오거나 힘든 일이 생겨 마음이 어려울 때는, 플래너에 적어 놓은 감사의 기록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일일이 다 읽지 않고 빠르게 책장을 넘겨도 그동안 제가 받은 축복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다시 감동과 감사가 밀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축복을 주셨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비록 넘어야 할 산이 내 앞에 있지만, 결국은 모든 일이 잘 될거라’ 생각되어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희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제 꿈을 펼쳐가는 작업을 계속 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복 탄력성이 생긴 것입니다. 감사하는 습관은 부정 편향성이 짙은 제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제가 달라지자 가정에도 서서히 긍정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불만이 많던 아이들에게서 언제부터인가 불평의 목소리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매일같이 싸우던 아이들의 관계가 서로를 돕고 지지하는 끈끈한 우애의 관계로 변했습니다. 가족 간에 웃음이 많아졌고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아이들에게 집은 긴장감이 아닌 편안함과 안식을 누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행복감이 커졌고 자신들을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인식합니다.
처음에는 지루하고 똑같은 이야기만 들먹이던 감사를 나누는 시간 (sharing time)이 점점 더 화기애애 해졌고 감사의 제목들도 다양해졌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친구들과 함께 감사를 나누는 모습들도 이따금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통화를 하다가도 감사를 나누는 시간이라며 전화를 잠시 끊는 아이들에게 도대체 sharing이 무얼 하는 시간이냐고 물었던 모양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감사 나눔을 제일 반대하던 첫째는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식구들이 모여 감사를 나누는 시간이 제일 그리울거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온 가족이 감사를 나누는 시간을 종종 갖습니다. 화상통화 기술이 발달한 덕분입니다.
둘째는 고 3이 되면서 학교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운 섬김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을 학교 공동체에 알리기 위해 매거진을 만들었습니다. 2022년 봄에 팀을 꾸려 Global 6K for Water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한 경험을 되살려서, 딸은 스스로 매거진 팀을 꾸렸습니다. 학생들이 역할을 나누어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 글을 쓰고, 모아진 자료들을 매거진에 담고, 글과 사진을 교정 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해 주었고, 총 책임을 맡은 딸은 리더십반 지도 선생님을 통해 학교의 재정 지원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딸과 딸의 친구들이 만든 매거진을 통해서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 감사와 격려의 문화가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니, 우리의 아이들이 어찌나 자랑스럽고 기특하던지요.
긍정적 마인드가 딸의 대학 진학에 미친 영향
당연히 딸아이의 공로는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Raderzine이라는 학교 매거진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순전히 딸 아이 스스로, 자신의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고, 2~3년에 걸쳐서 장착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방식이 결합해서 아이는 여러가지 도전들이 다가왔을 때도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일을 펑크 낼 때는 밤잠을 줄여가며 팀의 총 책임자로서 대신 그 일을 감당했고, 팀원들이 자신의 달란트를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각자의 역할을 제 때 감당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미국의 상위권 대학들은 이렇게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마음을 지니고, 리더십을 증명한 팀 플래이어 (team player) 들, 그리고 도전적이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학생들을 선호합니다. 이러한 자발적 동기부여, 도전하는 정신, 진취적 기상,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 진정한 리더십 등은 긍정적 마음가짐에서 시작합니다.
결론
아주 작은 차이 하나 하나가 모이면 아주 큰 차이점을 만들어 냅니다. 애플, 삼성, 구굴 폰들은 차의점이 많지 않습니다. 대충 보면 기능도 모양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애플에 더 마음이 끌릴까요? 대표적인 이유를 한가지만 꼽자면 애플의 디자인 때문입니다. 작은 디자인의 차이가 사람들에게 상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합니다. 백화점의 수많은 고급 안경, 구두, 가방들 중에서도 굳이 명품을 찾는 이유는 사람들의 여러 심리적 요인이 있겠지만, 명품이 제공하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이렇듯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긍정적인 습관들을 체득한 사람들입니다. 그 작은 실천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긍정과 감사를 마음에 채운 사람은 남들보다 가진 것이나 배운 것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긍정 겸험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음미하고, 소중히 여기고, 자주 떠올리고, 그에 대해 마음으로 그리고 입술로 감사의 고백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필요를 돌아 보며, 충분히 그 필요를 공급해 주는 훈련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온갖 부정적이고 어두운 소식들로 난무합니다. 사람들은 신문과 뉴스와 유투브 방송들을 통해서 이런 소식들을 접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 부정적인 것으로 채워지니, 부정적인 언어와 행동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게 됩니다. 게다가 어릴적부터 누군가에게 또는 매스컴에서 들어온 자신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메시지들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병들게 합니다. 더욱 슬픈 것은 자존감이 무너진 우리는 스스로에게 비수를 꽃은 악담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부정적인 언어와 행동들이 우리의 가정을 어두움과 아픔으로 오염시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러한 부정적인 자극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구출해 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세상의 소음을 차단해 보세요. 당신에게 남이 또는 스스로 들려 주었던 가시박힌 말들을 이제 그만 기억 속에서 지워 보세요. 그대신 감사로 마음으로 채워 보세요. 아픔과 불만의 상황에 고정했던 시선을 돌려 긍정에 고정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불평했던 습관을 그대로 사용하시되 집중하는 대상과 그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만 바꿔 주시면 됩니다. 그저 좋은 것들을 끊임 없이 찾아내고, 곱씹고, 그에 대해서 계속해서 감사하면 됩니다. 제가 변화하고 있듯이 당신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무엇에 대해 감사하십니까? 당신의 자녀 또는 부모님과 어떤 감사의 제목들을 나누시겠습니까?
[1] https://www.police.go.kr/www/open/publice/publice0202.jsp
[2]https://www.hira.or.kr/bbsDummy.do?pgmid=HIRAA020041000100&brdScnBltNo=4&brdBltNo=1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