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에게 길러주는 10가지 성공 마인드 – 7.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라.

열정과 집념으로 아이들을 폭풍 성장 시키시는 음악 선생님.
그분의 계셨기에 우리 아이들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했습니다.
Photo by Joshua Jung

 

저는 무얼 하면 멈추지 못하고 계속 그 일이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부엌에 들어가면 거기서 나오기 까지 5~7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번 청소를 시작하면, 집안 곳곳에서 새로운 일들이 계속해서 보였습니다. 청소 또한 1~2 시간 안에 끝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집안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고 보람이라는 걸 느끼기가 어려웠는데, 자기 발전 없이 그렇게 집 구석에서 점점 작아져 가는 저의 모습이 한심해 보였고 화가 났습니다.

 

나의 화에 기름을 붓다

저는 건강에 대한 강박까지 있었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병으로 잃었고, 저 또한 기초체력이 약했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매 끼를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영양도, 모양도, 음식의 가짓수도, 맛도 최고로 준비하려고 애썼습니다. 쿠키 하나까지 제가 직접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족의 건강이 제 손 안에 달렸다는 책임감에서 였습니다.

입이 짧아서 두어 숟가락만 먹고 나면 식욕이 사라지는 첫째와의 식사는 4~5년이 넘도록 매 깨니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무리 간식을 주지 않고, 밥을 굶겨 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손이 느려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는데도 하루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도록 음식을 삼키지 않는 아이와 몇 년이나 밥상에서 전쟁을 치루었더니, 언제부터인가 마음 속에는 화가 쌓이다 못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할 수 없다

그 상황 속에서도 어릴적에 골고루 잘 먹어야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까지 좋은 식습관을 갖게 된다는 어떤 전문가의 조언을 곧이곧대로 믿고, 아이를 반드시 바꾸고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것이 엄마의 마땅한 책임이자 의무라고 믿었습니다. 아이의 그릇에 정성껏 준비한 밥과 반찬을 골고루 담다 보면 어른이나 먹을 수 있는 양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해달라는 음식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부탁 대로 해준 음식에도 아이들은 불평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먹는 속도는 느렸고 식탁에서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감사는 커녕 불만을 토로하는 식구들을 보며, 저는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이 저 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그냥 포기해 버릴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니…

어느 날 마샬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를 읽는데, 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엄마를 발견했습니다. 그 엄마는 로젠버그 박사의 말에 강하게 항변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 비폭력 대화 워크샵에서 마샬 박사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암시하는 우리의 언어에 대한 위험성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해야 했고, 그러니 ‘그 일을 한 당사자에게 책임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해야만 했기 때문에 청소기를 돌렸어요.” “나는 어릴적 가정 폭력에 시달렸기 때문에 지금 나의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게 되었어요.” “아이가 대들어서 벌을 주었어요.” “상사가 시켰기 때문에 고객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 했어요.” “친구들이 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녀서 저도 하나 샀어요.” “나라 정책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벌금을 물게 하는 겁니다.” “아빠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경제적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해요.” “먹고 싶은 충동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사탕을 먹었어요.”

이 모든 말들은 막연한 의무감이나 강요, 어떤 전문가에 의한 진단이나 심리적인 상태, 다른 사람의 행동, 권위자의 명령,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부터의 압력, 정책이나 규칙, 성 역할이나 나이에 따라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 제어할 수 없는 욕망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돌리는 말입니다. 즉, 한 마디로 핑계 이지요. 나의 과거의 경험, 정황적 압력, 시대적 요구, 상대방, 또는 자기 자신의 성향 등을 ‘탓’하는 말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말입니다.

그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요!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로젠버그 박사는 그 엄마가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정말 답변하기 쉬운 질문이네요! 저는 오늘밤 집에 돌아가서 밥을 해야 해요. 나는 밥 하는게 싫어요! 나는 밥을 하는게 정말 열정을 다해 하기 싫은데, 너무 아파서 움직이기 힘들 때 조차 음식을 해왔어요. 그것도 매일같이, 20년 동안이나요. 왜냐하면 그건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로젠버그 박사는 그렇게 오랫동안 하기 싫은 일에 어쩔 수 없이 인생을 쏟아 왔다니, 듣는 자신도 슬퍼진다며 위로를 건넸고, 비폭력 대화를 배우면서 좀 더 행복한 가능성들을 찾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는 그날 집에 돌아가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음식을 하고 싶지 않아.” 3주 후에 그 엄마의 쌍둥이 아들들이 워크샵에 왔고, 로젠버그 박사는 엄마의 선언에 어떻게 반응 했는지를 물었습니다. 아들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마샬 선생님, 저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엄마가 더 이상 밥상에서 불평을 하지 않으시겠네요’ 하고 생각했어요”[1]

아들의 반응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밥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일을 하나라도 더 해야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들은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길, 자신들이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저에게는 요리와 집안 일이 의무감과 책임감에 의해 억지로 해온 일이었는데, 굳이 그렇게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희생이 아니며,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제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꾸역꾸역하지 않고도, 가족이 굶지 않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윈-윈 솔루션을 찾다

그 해답을 찾고 적용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떤 부모님은 이미 이것을 잘 실천하고 계실텐데, 그래도 많은 가정에서는 그것을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찾은 해답은 바로 아이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쉬운 답변이어서 이 글을 쓰면서도 제가 다 허무하네요. 저의 도움 없이 아이들이 식사를 준비하게 되기까지는 몇 가지의 과정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의 인내와 수고도 필요했습니다.

먼저, 아이들이 아직 음식 만들기에 관심이 있을 때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단점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음식을 하다가 어지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치운다 해도, 결국은 부모가 해야할 일이 늘어나는게 사실입니다. 아이의 성향도 중요한데, 정리 정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면,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어도 부모가 닦고 치워야 할 일이, 부모가 직접 음식을 하는 수고 보다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저희 막내는 유아원에 다닐 때부터 요리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음식을 함께 하면, 제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위의 두 아이들은 하고 싶어해도 시켜주지 않았는데, 내리사랑 때문인지 막내는 유아원 시절부터 요리에 입문시켜 주었습니다. 아이는 밀가루나 빵가루가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시기부터 둘째도 스스로 간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주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과자나 음료를 사지 않았고, 설탕이 거의 안 들어간 쿠키를 직접 구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교회와 학교에 다니면서 이미 설탕에 입맛이 길들여졌고, 자신들도 친구들이 먹는 간식을 먹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럼 내가 재료를 사 줄테니 네가 직접 만들어 먹어. 대신 설탕은 1/3만 넣고.”

아이들에게는 몇 가지 주의사항과 아주 기초적인 기술만 알려주었습니다. 나머지는 ‘스스로 먹고 싶은 음식의 조리법을 찾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하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옆에 있으면 자꾸만 잔소리를 할 것이 뻔하고, 몇 번 잔소리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제가 대신할게 눈에 선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들을 지도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아이들이 음식을 하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아이들이 만들 수 있는 음식의 종류를 각자의 실력에 맞게 정했고, 그 가짓수를 늘려갔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도전한 횟수가 많아질수록 아이들의 요리 실력이 늘어갔습니다. 둘째도 요리를 즐거워 하고 잘 하지만, 막내의 요리 솜씨는 정말 훌륭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막내는 더욱 다양한 고난이도의 요리에 도전했습니다. 실패 할 때도 더러 있지만 자신의 스승을 골든 램지 Gordon Ramsay로 정한 만큼, 아이는 최상의 맛과 비주얼을 추구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가끔 장도 스스로 봅니다. 다 큰 남자 아이가 장가방을 들고 마트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흐뭇한지 모릅니다.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책임과 결과

아이들이 종종 음식을 했다고 해서 제가 늘 앉아서 얻어만 먹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잘 치우라고 말해도 아이들은 온 주방을 어질렀습니다. 저는 워낙에 제때제때 치우고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던지라, 몇 달에 한 번만 청소해도 주방이 항상 깨끗했는데, 아이들이 주방에 한 번 들어가면, 그 후에는 제가 반드시 뒷처리를 해야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스토브 탑을 비롯해서 부엌 바닥, 냉장고와 찬장 문, 찬장과 서랍 안,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그릇과 집기와 조미료 통까지… 아이들은 밀가루 같은 음식 재료를 사방에 묻혀 놓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음식을 하면, 제가 한 시간도 넘게 청소를 하는 날이 수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OO아, 네가 음식을 할 때 너무 많이 흘려서 엄마가 청소 하느라 힘들어. 음식 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조금씩 치워 줄래?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많이 컸어도 아직은 배우는 시기 인지라, 아무리 부탁해도 잘 치우지 못하는 아들이 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기 싫어하는 요리를 하느니, 차라리 치우는게 낫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아이가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전에 삶의 기술 하나를 훌륭하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아들은 가끔씩 고급 레스토랑 음식에 준하는 요리들로 저희 가정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저는 요즘 집안 일을 최소화 하고 있습니다. 한 자리에서 같은 일을 꾸준히 하는 저의 단점을 장점으로 사용해서, 지금은 부엌이 아닌 책상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을 성장 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들을 통해서 또 다시 발전합니다. 이렇게 보람을 느끼는 일들을 꾸준히 하고 있는 덕에, 이제는 요리나 설거지를 생각할 때 느끼는 일의 무게가 줄어든 것 같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의해서, 억지로 희생할 때 느꼈던 슬픔, 억울함, 짜증 등의 감정이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조차 요리가 항상 즐겁지만은 않고 체력과 시간이 소모되는 일임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에, 밥상에서의 불평이 거의 사라졌고, 수고한 손길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제가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아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며, 밝은 면을 보려 노력하자 우리에게는 감사할 일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희 아이들은 아직도 불평을 합니다. 저도 그렇구요. 그렇지만 불평을 일삼던 습관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대신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실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아이들… 불평하는 사람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저희가 워싱턴 주로 이사 온 후 막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같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전학을 온 학교에는 미술도 음악도 없고, 읽기나 수학 시간에도 배우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막내 반의 과반수 이상 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2~3년 뒤쳐져 있었고, 학습 태도는 아주 나빴으며, 선생님께 대한 예의가 상당히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막내가 다니던 초등 학교도, 둘째가 다니던 중학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어떤 수업은 선생님이 진도를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매 번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급기야는 수업 중에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 몸싸움이 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안 가겠다며 우는 막내를 매일같이 달래가며 간신히 졸업 시켰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막내는 누나의 조언에 따라 음악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질서가 없고 어수선한 학교에서도 음악 교실 안에서 만큼은 선생님의 권위가 있었고,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의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엄청난 열정으로 학생들을 지도 하시니, 엄격한 규율과 기준을 세워도 학생들이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이런 선생님 밑에서 학생들은 자기 조절력을 기르고, 배움에 충실하며,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 학교의 음악 수업은 오케스트라와 밴드 수업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학생들 대부분의 가정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대부분은 악기를 사지도 못하고 개인 교습을 받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학생들이 각자의 악기에 맞는 악보를 읽고, 정확한 음을 짚어내고, 박자를 맞추도록 지도하는 것이 모두 중학교 음악 선생님의 몫이었습니다. 물론 학교 외부에서 지원되는 도움이 있기는 하지만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을 지도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그 오합지졸 학생들을 1년 만에 훌륭한 음악가들로 성장시켰습니다. 매 학기마다 오케스트라와 밴드, 그리고 재즈 밴드 콘서트가 있었는데, 겨우 몇 개월 만에 월등하게 성장한 아이들의 실력에 우리는 매 번 혀를 내두르며 선생님을 칭찬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틈만 나면 음악실에서 선생님과 담소를 나누고,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며, 특별 지도를 받았습니다. 상위권이던 아이들의 성적이 하향세를 유지하고, 학교에서 접하는 온갖 성적으로 문란한 언어적 신체적 표현들로 인해 걱정되었지만, 이렇게 좋은 선생님과의 인연이 우리로 하여금 감사함으로 그 시간을 버티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이제 둘째와 막내는 모두 고등학생입니다. 벌써 둘째가 졸업반이니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났네요. 저희 아이들은 중학교를 졸업한지 오래 되었는데도, 아직도 그 음악선생님을 찾아갑니다. 이유는 선생님과 후배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오케스트라에서 첼리스트들을 가르치고, 그 아이들과 함께 연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막내는 선생님을 대신해 밴드 학생들을 지도 하기도 하고, 재즈 밴드에 합류해서 후배들과 연주를 하고, 동기 졸업생과 함께 솔로 & 앙상블 대회를 준비하며 선생님께 지도를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저희 아이들은 이제 학교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사람들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둘째가 몇 개월부터 준비한, 세코야 중학교 Sequoyah Middle School의 방과후 과외활동 프로젝트가 이제 몇 주 안에 시작될 것입니다. 중학교 동기동창들과 현재 재학중인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Jefferson High School의 학생들이 조를 이루어, 세코야 중학교 아이들의 숙제를 돕고 학습을 지도할 것입니다.

 

결론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에게는 불편한 점들도 많고, 실망스러운 일들도 일어납니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그 문제 자체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문제를 발견했을 때 불평하고, 누군가를 헐뜯고, 비난하며, 탓을 돌릴 대상을 찾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문제는 누구에게든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도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행복지수가 제일 높은 핀란드에 산다 해도 문제는 일어 납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오르고 세상의 모든 부를 거머 쥐었다고 해도 문제에서 영원히 자유로와질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문제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에 직면하는 태도입니다.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삶의 자세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불편함을 해소하는 물건을 만들어 제공합니다. 삶을 더욱 안락하게 하고, 일 처리를 빠르고 쉽게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더 많은 대중에게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을 안겨주는 사람일수록 크게 성공합니다. 문제를 찾아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더 좋아집니다. 비폭력 대화로 갈등을 풀다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고, 그만큼 서로를 존중하며 아끼는 마음이 커지게 됩니다.

말로 문제를 지적하고 불만을 늘어 놓는 사람이 아니라, 공감의 자세로 경청하며, 긍휼의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들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시대를 알고 시대의 필요를 채우는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저희 아이들이 음악 실력이 뛰어나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아이들은 대회에 나가 입상한 경력도 없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딸은 악기에서 손을 뗀지 2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언변에 뛰어나고 모든 일을 성공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작은 섬김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해결책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오늘도 이 일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시다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시겠습니까?

 

[1] Rosenberg, Marshall B. Nonviolent Communication: A Language of Life. Encinitas, CA: PuddleDancer Pres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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