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해진 우리 아이들
지난 해에 <오은영의 화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어 보니 오은영 박사님를 찾아 오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식구들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특히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은 어떤 상처들은 너무나도 깊고 파괴적이었습니다. 가장 큰 사랑과 전폭적 지지를 받아야 할 부모로부터 상처를 입은 것도 힘든데, 자신에게 그런 고통을 준 부모를 용서할 수 없음으로 인해 2차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인 자녀들이 꽤 많은 듯 했습니다. 한편 최선을 다해 기른 자녀가 자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하니 그 부모님들 또한 억울했고, 답답했고, 안타까웠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 또한 친정 아버지와 갈등의 골이 깊었습니다. 분명 아버지는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계셨는데, 저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6.25 전쟁 직후 아직 아기였을 때, 전염병으로 당신의 아버지를 잃으셨습니다. 어머니 손에서 가난하게 자란 아버지에게는 좋은 롤 모델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영적, 정신적, 정서적 권위를 가지고 가정을 안정감 있게 가꾸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셨습니다.
‘엄격한 훈육이 사람을 바르고 강하게 자라게 한다’는 신념을 가지신 아버지는 가정에서 지나친 체벌과 훈육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했습니다.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우리 4 자매는 ‘용서’가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호령이 벼락 같이 떨어졌고, “바보” 같은 잘못을 한 딸들에게 항상 가차 없는 체벌이 따라왔습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불안감이 늘어, 어릴적에는 잠시 거짓말과 도둑질의 유혹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사춘기가 되어 아버지의 실수와 잘못이 눈에 들어오게 되자, 반항감이 생겼습니다.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지나친 억압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어릴적부터 병약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셔야지, 그제서야 비로소 집안에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제가 고2 때 여러가지 합병증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저는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에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아버지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몸은 가까이 있었지만 아버지와 끈끈한 사랑으로 마음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남아 있던 것은 죽음이 다가옴을 알고도 딸에게 ‘미안하다’ 한 말씀 안 하신 그분에 대한 실망감, 죽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과 죄의식, 그런 아버지를 제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대한 분노, 가족에게 조차 사랑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한 동정심,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로부터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비참했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죽음을 마음 깊이 애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상적인 부녀 관계를 맺어 왔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허망했던 긴 세월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아버지가 잘못 한 것은 많지만 천국에 가셨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가족의 삶도 한결 평안 해졌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별의 슬픔이 책을 읽으면서 또는 영화를 보면서 불쑥불쑥 찾아왔습니다. 끝까지 풀지 못했던 갈등과 상실감의 실타래는 때로는 잔잔하게 흐르는 눈물로, 때로는 쏟아지는 애통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여전히 저의 인생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용서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버지 같이 강제적으로 억누르지 않고, 인격적으로 자녀를 양육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대학에서 기독교 교육학을 전공했습니다. 상담학 수업도 들어보고 연애 중이던 남편에게 열변을 토해가며 가부장적인 남자들에 대해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 수 있을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낳아서 키워보니 저는 제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에 비하면 아버지가 더 인격적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아이들을 대하는 저의 모습이 백설공주의 새엄마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한결같은 안정감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말 해야 지혜로우면서도 평화롭게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싸우면 무조건 야단을 쳤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면 제 눈은 무서운 매 같이 아이들을 감독했고, 입에서는 채찍을 휘두르듯 평가하고 비난하는 말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욱하고 올라오는 화를 가득 담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며 아이를 체벌했습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머리가 하얗게 되었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두려움에 떠느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저의 체벌을 무서워 하면서도 같은 잘못을 계속해서 하는 아이들을 용서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이 그렇게 못마땅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스스로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슴 깊은곳 한켠에서는 한심하고, 바보 같고, 무능하고, 가치 없고, 가능성 없는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만큼은 저같이 패배자로 키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아이들에게서 발견될 때, 저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만은 고쳐주려고 발악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저의 낮은 자존감과 상처를 아이들에게 전수시켜 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스쿨버스를 타러 나가는 초등학생 아이에게 또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가 내 하루를 망쳐 버렸어요”라고 말하며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화를 내며 말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동안 ‘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한’ 잔소리가 쌓여, 아침부터 아이의 기분을 짓밟 놓은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미안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귀히 여기는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기는 커녕, 불행하게 하는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소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
그 당시에 마샬 로젠버그 박사의 책 <비폭력 대화>를 읽었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펑펑 울던 저는 그 책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썼습니다.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머리가 백지가 되었고, 갑자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책의 내용을 적용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저자의 안내에 맞게 편지를 써서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전달했습니다. 아이가 그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한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저는 달라진 아이의 표정과 분위기를 통해 저의 진심이 잘 전달 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폭력 대화야 말로 효율적이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던 저의 양육 방식을 대체할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스스로의 말과 행동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고 해도, 우리의 부모들이 그렇게 해 왔다고 해도, 저의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이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일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은 제가 먼저 회복 되는 것이었습니다.
비폭력 대화를 통해 매번 “짜증나고 열 받는다”라고만 표현되었던 저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 보았습니다. 책에 쓰인 ‘감정 목록’ 속에서 저의 짜증 속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들게 된 원인, 즉 채워지지 않은 저의 필요와 가치를 ‘보편적인 욕구 목록’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어릴적부터 이런 작업을 해 본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고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들여 도전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제 스스로의 감정과 필요를 알아 내는 것 만으로도 저는 막연한 두려움과 분노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작업이 제게 치유와 회복을 가져옴을 알았기에,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할 것 같은 창피한 감정이나 필요라도 솔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사실 상담가 같은 타인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저 혼자 또는 아이들과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좀 더 편안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의 감정과 필요를 알아낸 후에는, 어떻게 하면 그 필요를 스스로, 또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채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자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엄마의 모습을 좋아했습니다. 어리다고 무시하며 위에서 군림하던 엄마의 변화되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꼈고, 함께 회복되어져 갔습니다.
우리는 풀기 어려운 갈등이 생길 때 비폭력 대화를 함께 실천했습니다. “네가 관찰한 상황이 무엇인지, 그 상황에 대해 네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네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대방이 너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지 말해봐” 저는 심하게 다툰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이야기 했습니다. 쌍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 싸웠으니 무조건 둘 다 혼나거나, 잘못한 사람이 혼나는 방법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예전보다 평화로운 상황들이 펼쳐졌습니다.
비폭력 대화로 저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필요를 돌아보고 충족시켜 주면서, 상처받은 마음과 자존감이 회복되어져 갔습니다. 동시에 게리 체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읽으며 저와 아이들에게 중요한 사랑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MBTI를 통해 저와 아이들의 성향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부족한 부모로 인해 병들어가던 아이들이 이제는 부모와 함께 성장하고 성숙되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 감사와 감동이 가슴에 퍼져갑니다.
응징하는 사람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자 일어난 변화들
예전에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그나마 우리 가정의 문제가 밖으로 표출되는 일이 없었기에 감사했으나, 지금은 가식적으로 꾸며내지 않아도 우리 가정은 화목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되었습니다. 물론 문제가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우리는 성장해 갈 부분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갈등의 상황에서 서로에게 응징하거나 복수하는 사람이 아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통해서 작고 큰 성공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면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을 스스럼 없이 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강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제 스스로의 연약함을 다독이며 보살피다 보니, 아이들을 용서하고, 아이들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갑자기 열이 확 오르고 욱하는 습관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감정을 다스리며, 평화롭게 대화로 갈등을 풀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문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람이 아닌 문제를 공격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로부터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갈등의 상황이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갈등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갈등이 생길 것을 미리 두려워하여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도 줄었습니다. 아이들이 오히려 십대가 된 후에 저와의 관계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서로 협력하고 지지하는 사랑의 관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에 대한 존중감이 높아졌습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의 결속력이 높아지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편안해졌습니다. 식구들에게 우리집은 안식을 누리는 곳, 빗장을 풀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 서로를 살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일어난 변화 – 권위주의자도 무섭지 않아
비폭력 대화를 통해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되는 저를 보면서, 저희 아이들은 자신들의 인간관계 속에서도 비폭력 대화를 실천해 왔습니다. 친구들과 미묘한 감정의 교류가 생기거나 갈등이 있을 때, 책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리며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과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녀 중에 누군가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것을 알게 되면, 저는 다시 예전의 습관이 올라와서 상대를 해석하고, 분류하고, 비판하게 되는데, 저희 아이들이 오히려 평정심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한 중장거리 코치께서 화가 끝까지 올라서 딸을 억울하게 훈계했습니다. 딸이 팀의 캡틴이고 권위에 순종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지라, 저희 딸에게 마음 놓고 큰 소리를 내신 것 같습니다. 함께 있던 팀원들이 오히려 부당하다며 노발대발했고, 어떤 학생은 딸을 대변하고자 코치께 대들기도 했습니다. 딸은 그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팀원들을 진정시켰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와 대화를 나눈 딸은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딸은 코치께 이메일을 썼습니다. 무어라 쓴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두 분의 코치 모두 딸에 대한 태도가 확 바뀌셨습니다. 애정 어리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시며, 딸의 의견을 더욱 존중해 주십니다. 또한 경기가 있는 날이면 팀원들에게 스트레스가 올라온 상태에서 연설을 하시며, 열심히 달리고 있는 선수들을 격려한다면서 오히려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이제는 팀원들을 격려하시는 말씀을 의도적으로 더 많이 하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딸의 소통하는 능력은 팀원들이 하나가 되게 하였습니다. 엄청난 헌신을 하시면서도 팀원들에게서 소외 받던 코치들이 소속감을 느끼실 수 있게 했습니다.
결론
소통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은, 용서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저 자신, 그리고 타인과 평화를 이루는 과정이었습니다. 갈등을 오히려 서로를 깊이 알아가게 하는 기회로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서로를 더 잘 용납하고 섬기며, 아름다운 관계와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은 부당한 이유로 저와 가족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어떤 두려움이나 아픔으로 인해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깊이 관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무언가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할 때,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아직 다 꺼내지 못한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가정은 변화합니다. 그런데 그 변화는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가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 넘길 수 없습니다. 비록 상대방이 문제를 더 많이 일으키고 당신에게 고통을 줄지라도,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열쇠는 당신이 쥐고 있습니다. 당신부터 변화하십시오. 그것이 항상 옳습니다. 최고의, 그리고 최선의 방법입니다. [1]
주의 사람들은 천천히, 그러나 자연스럽게 바뀌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멋지게 변화된 모습을 지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2] 비폭력 대화는 우리를 소통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오래된 고질병 같은 우리의 나쁜 소통 습관들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비록 과정이 길고 순탄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효과를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에게 행복을 선사할 것입니다. 당신은 비폭력 대화로 어떤 문제를 해결 하시겠습니까?
[1]https://miraclewords.org/2021/05/03/%ec%a0%88%eb%a7%9d%ea%b0%90-%ec%a3%bd%ec%9d%b4%ea%b8%b0-4-%ed%99%98%ea%b2%bd%ec%a1%b0%ec%84%b1-a/
[2]https://miraclewords.org/2021/05/03/%ec%a0%88%eb%a7%9d%ea%b0%90-%ec%a3%bd%ec%9d%b4%ea%b8%b0-4-%ed%99%98%ea%b2%bd%ec%a1%b0%ec%84%b1-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