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내면 세계의 질서는 영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사회나 교회에서 아무리 겉으로 화려하고 훌륭해 보이더라도, 내면 세계의 질서를 잘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영적으로는 계속 고갈되고 결국 무너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내면 세계는 말 그대로 외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닙니다. 이때문에 사람들에게 내면 세계의 질서가 중요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 중요성을 깨닫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내면 세계의 상태는 자기 자신도 잘 알아차리기 힘들고, 타인이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내면 세계를 가꾸는 일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 세계의 질서를 세우고, 내면 세계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크나큰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그리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기 때문에 그 해묵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고든 맥도날드 Golden Mcdonald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을 정리하면서 필자의 경험과 생각을 추가한 것입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우리가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영적 훈련을 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 훈련은 지성, 영성, 시간, 관계 등의 자기관리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올바른 방향과 방법으로 해내는 것입니다. 그 훈련은 또한 철저히 계획적이고 의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번 나누어 글을 공유하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 세계는 어느 상태인지 점검하고, 여기서 제시하는 원리와 방법들을 삶 속에서 적용하면서 내면 세계의 질서를 찾고 영적으로 성숙하여, integrity한 참 그리스도인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외적 세계와 내면 세계의 차이점
우리 자신을 기준으로 세계를 둘로 나눈다면 외적 세계와 내면의 세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세계는 각각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외적 세계는 우리의 시간, 충성, 물질, 에너지를 끊임 없이 요구합니다. 가시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쾌락적입니다. 비교 평가가 가능하고, 공적이 드러나고 실용성이 증명되는 영역입니다. 이 가시적인 영역은 시각에 예민한 우리의 관심을 끌고,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큰소리로 아우성칩니다.
반면 내면의 세계는 비가시적입니다.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인이드 그렇지 않든 인간의 내면 세계는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대로 활동하고 헌신하는 것을 추구하는 세계입니다. 우리의 내면 세계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하나가 되는 내적 조화를 추구합니다. <파이드로스 Phaedrus>에서 소크라테스가 “나의 겉사람과 속사람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듯이 말입니다.
외적 세계와 내면 세계의 오해, 그리고 진실
우리는 외적 세계가 특별해 보이고 성공적으로 보이면 내면 세계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흔히 바쁜 스케줄은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성공에 대한 척도가 됩니다. 목회자가 공적으로 많은 활동을 할수록 영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지식이 많을수록 하나님과 더 가까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회가 클수록 하늘의 복이 클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때때로 발생합니다. 기도를 유창하게 잘 하고, 말씀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언변이 뛰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고 빨리 높은 위치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지 못하며, 마음이 공허하고, 영적으로 메말라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면세계로부터 외부 세계를 지향할 때 가장 잘 살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스티븐코비 Stephen Covey는 이를 ‘내면으로부터 외부로 향하는 접근’ inside-out approach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4장 23은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키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면의 조종실인 마음을 지키는 일은 반드시 의도적인 훈련과 선택으로만 가능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 (외부 세계)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롬 12:2) 이 말씀은 곧 ‘내면을 정비하여, 마음이 외부 세계를 통제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외부 세계에 의해서 통제받는 삶이 아닌 내면 세계의 질서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는 삶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외부 세계가 지향하는 목적과 가치는 우리의 내면 세계에 질서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그것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 Raph Waldo Emerson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사는 것은 쉽다. 홀로 살면서 스스로의 의견을 좇는 것도 쉽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군중의 한복판에서 고독 가운데 독자성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사람이다.”
외적 세계에 치중하는 이유
우리 대부분의 삶은 외적 세계에 치우쳐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거의 항상 누군가의 인정을 갈구합니다. 겉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공적인 자리에서 칭찬을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도, 적어도 가까운 사람들만은 우리의 노고와 헌신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과 인정에서 자유롭지 못한걸까요?
고든 맥도날드 Golden Mcdonald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에 등장하는 한 성공한 실패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은 항상 우상이었습니다. 내가 한 행동 중에 아버지를 기쁘게 한 것은 일뿐이었지요. 아주 기쁘시게 하지는 못했지만요.”
“아버지는 제가 하는 일은 뭐든 거의 흡족해하지 않으셨어요… 한번만 더 들으면 천 번은 들은 말이에요… 내가 무슨 일을 마치든 아버지는 그걸 보시고 나서 내가 실수한 부분을 지적하셨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아들, 너는 실패자야. 앞으로도 항상 실패자일 거야.”
“믿기 힘드시겠지만 제겐 평생 매일 이 말이 들립니다… 그 사람이 죽은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이 성공한 실패자를 비롯해 우리의 인정 결핍 증세는 중요한 인물로부터 인정 받고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 생활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데 평생을 보냅니다.
지나치게 일에 매몰되는 것은 인정, 칭찬, 관심의 결핍을 느끼며 자란 사람들이 결핍을 보상 받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일로는 만족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정 결핍은 결국 박수갈채, 부, 권력에 대한 그치지 않는 탐욕으로 변질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아무리 채워도 우리는 결코 만족감을 누리지 못합니다. 결국 내면 세계는 점점 더 황폐화 되고 텅 비어져서 진짜 real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인정 결핍에 의한 인정 중독의 치유 방법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인정 결핍으로 인한 인정 중독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첫째,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실패자로 여긴 그 권위자를 용서합니다. 둘째, 그 권위자의 기쁨이 되려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인정 받기를 구합니다. <불의 전차 Chariots of Fire>에서 에릭 리델이 여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뛸 때 하나님의 기쁨이 느껴져.” 셋째, 용서 의식을 갖습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용서가 될 때 까지 지속적으로 용서하고 또 용서 합니다. “네, 아버지를 용서해요.”라고 말하며, 그 분을 향한 분노를 버리기로 결단했음을 선포합니다. 또한 그 중요한 인물과의 관계가 평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예수님께 선포합니다. 넷째, 우리의 동기, 선택, 가치관을 솔직히 파악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것이 우리가 칭찬 받고 인정 받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 받기 위해서인지를 파악합니다.
지나친 외적 보상의 추구와 그 결과
부모의 친밀한 사랑과 정서적 애착이 결핍된 환경에서 자란 이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내면 세계의 질서를 통해 보상 받으려 하지 않고, 외적 차원에서의 보상을 추구합니다. <완벽한 사람> 찰스 블레어 Charles Blair 목사님의 인정 받고 싶은 욕구는 온갖 유의 그럴듯한 영적 동기로 치장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가난한 어린시절에 겪은 상처와 수치 때문에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야망은 어느새 그의 삶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중심의 깊은 곳에는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가 끊임 없이 그를 따라 다니며 괴롭혔습니다. 그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쫓았던 외적인 성공은 그에게 쫓겨다니는 삶의 방식이 고착화되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를 간과하게 했습니다. 그 상처가 그의 동기, 선택, 가치관에 영향을 끼쳤고,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는 크나큰 파멸, 실패, 곤혹감, 사회적 망신이었습니다.
분주함의 종류와 차이
사실 분주한 삶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도 하나님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분주함이 바른 방향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는 생산적인 분주함인지 아니면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파괴적인 분주함인지를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먼저 생산적인 분주함의 원인은 그 삶의 뚜렷한 목적에 있습니다. 그래서 생산적인 분주함은 특정한 목적 의식에 따라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하게 세워지고, 그 우선순위에 맞게 세운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분주함입니다. 당연히 그 목적의 방향은 하나님의 비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는 높은 생산성, 성장, 유능함, 성취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파괴적인 분주함은 목적이나 우선순위가 없는 생활의 무질서에서 오는 분주함입니다. 연이어 쏟아지는 일과 요구에 아무 생각 없이 반응하는 생활 방식에서 오는 분주함입니다. 내면 세계의 무질서 오는 분주함입니다. 눈에 잘 띄려 하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에게 감명을 주려고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분주함입니다.
사실 쫓겨다니는 삶은 습관이며 중독적입니다. 그 결과는 끝이 없는 일, 불안정한 생각, 민감하고 짜증 많고 암울한 정서 상태, 분노조절 능력 약화와 감정 폭발, 신경 쇠약, 가까운 사람들과의 갈등입니다. 결국 영적, 정서적, 지적, 신체적 고갈 상태와 붕괴 직전의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프레드 미첼 Fred Mitchell는 “너무 바빠서 삶이 황무지로 변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p. 32)
그러면 우리의 상태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요? 파괴적인 분주함과 내면 세계의 무질서에서 우리 자신을 얼마나 잘 보호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궁금하시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의 저자 고든 맥도날드는 내면 세계의 무질서를 싱크홀 증후군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싱크홀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지 체크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참, 싱크홀은 미국 동부 플로리다에서 갑자기 지반이 지하로 꺼져서 생기는 커다란 구멍을 이야기 합니다.
자 그럼, 한번 솔직한 자기 인식의 시간을 가져 볼까요?
싱크홀 증후군을 보여주는 증거
- 나는 너무 숨가쁘게 살고 있다
- 나는 거절을 잘 하지 못한다
- 나를 종종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는데, 나는 내가 항상 못나다고 느낀다.
- 나는 기술과 재능으로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 나는 성경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세상의 흐름과 문화가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 나는 하나님의 임재에 거하는 경배와 기도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
- 나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삶을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나는 피곤에 찌들어 있다.
- 지금껏 추구해온 목표에 대해 환멸과 실패감을 느낀다.
- 내면 세계를 정비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 일이 잘 안 풀릴때는 차라리 포기하고 도망가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 지금 나는 내 인생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것 같이 느껴진다.
- 어떤 일에 실패하면 나는 의지와 자신감과 소망이 희미해진다.
-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이다.
- 내 생각은 언제나 옳다. 그러니 모두 내 의견을 따라야 한다.
- 나의 의견을 반대하고 거절하는 것은 나를 거절하고 버리는 것이다.
- 타협과 협상은 약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보다 내 뜻 대로 움직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내가 한 선한 일들은 너무 많아서 나의 실수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 나는 무언가를 성취해야 만족감을 느낀다.
- 나는 특별하고 많은 성취 목록을 가지고 있다.
- 나의 성취로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을 때 쾌감을 느낀다.
- 나는 항상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거나 세미나에 참석한다.
- 일의 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과만 중요하다.
-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만한 직함, 학위, 집의 크기, 고급 사무실, 매력적인 배우자를 소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 나는 계속 성장하고 성공하기 위해 끊임 없이 기회를 찾으며 도전하느라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성취를 음미할 여유가 없다.
- 내게는 사회적인 성취와 성공이 내면과 인격의 성장 보다 중요하다. 나의 시간표가 이것을 보여준다.
- 나의 성공을 위해서는 실용주의적이 될 필요가 있으며, 도덕적으로 어느 정도의 타협이 불가피하다.
- 목표를 달성하는데 쓸모가 없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앞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 공감 보다는 상대를 제압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즐거운 분위기로 일하는 것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인간 존재의 건강과 안녕과 성장 보다 성취와 성공이 더 중요하다.
- 나는 목표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내고야 만다.
- 모든 일은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다.
- 나는 승부욕이 강하다.
- 나는 타인 보다 더 멋지고 항상 멋져 보이려 노력한다.
- 이기는 것은 내가 옳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 내는 일이다.
- 나와 경쟁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다.
- 누군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거나 비판하고, 다른 의견을 내세우면 화가 난다.
- 나와 이견을 가지거나 나를 판단하는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때로 이런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복수한다.
- 나는 바쁘게 지내는 것이 자랑스럽다. 바쁜 스케줄은 성공의 상징이다.
- 영적 훈련이나 활동은 시간 낭비이다.
- 나는 너무 바빠서 가족이나 친구와 일상을 나누며 한가하게 보낼 시간이 없다.
- 사람들은 빈틈 없이 짜인 나의 스케줄을 보고 놀라지만 나는 그 많은 책임감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싶다. 그러나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두렵다.
- 갑자기 나를 찾는 사람이나 일이 없을 때는 무얼 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럽다.
- 나에게 경력을 쌓고 출세를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 내적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외적으로 굉장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인생이 잘 풀리고 있는 증거이다.
- 나에게는 일이 가족보다 중요하다.
- 취미나 낭만은 쓸데 없는 시간 낭비이다.
- 나의 일, 그 일로 함께 하는 사람들, 직업, 재산, 타고난 재능, 영적 은사, 건강 등은 나의 소유이다. 이 중에 어떤 것을 잃는다면 크게 상심할 것이다.
내면이 무질서한 사람의 특징
-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다.
- 유창한 말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영향력을 미치나 열매가 없다.
- 약속을 잊고 지키지 않는다.
- 시작한 일을 끝내지 않는다.
- 마감일을 종종 놓친다.
- 열변을 토하지만 그대로 실행하지 않는다.
- 쓸데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 자기 훈련이 없다.
- 책상 같은 주변 환경이 정리되지 않는다.
- 자존감이 낮아지고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 자신이 한 일이 성에 차지 않으며 보잘것 없다고 느낀다.
-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거의 누리지 못한다.
- 성경 공부와 묵상, 중보 기도, 예배 등의 영성 훈련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 놓지 않는다.
- 자기 관리가 안 된다.
- 가까운 사람들과 피상적인 대화만 나눌뿐 깊은 교제를 하지 못한다.
-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분노 조절이 잘 안 된다.
- 나 자신과 직업, 그 밖의 모든 것이 싫다.
당신은 ‘내면이 무질서한 사람의 특징’을 얼마나 많이 지니고 있나요? 고든 맥도날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 사용 면에서 무질서해질 때, 우리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일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p.105)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인가요? 그렇게 인정 받기 위해 열심히 달렸는데, 돌아오는 것은 우리 내면과 시간 사용의 무질서이고, 결국 우리 자신에게서도, 우리의 일에서도, 우리의 환경에서도 만족과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니요!
만일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일이, 우리의 환경이 아직도 불평 거리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진 곳이 어디인지 살펴서, 하나님 앞에서 다시 온전하게 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앞으로 고든 맥도날드의 가르침과 함께 그 방법들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