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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계획을 세우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

당신은 주도적인 삶을 살고 계신가요? 잠언 저자는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잠언 16:9). 그렇다면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꿈을 추구하는 일이 헛된 것일까요? 크리스천에게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삶은 불가능한가요? 이 글을 통해서 제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나누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이 창조주의 어떤 섭리와 계획에 따라 지음받은 이상, 우리는 그분이 정해 놓으신 원칙과 순리대로 살아갈 때 가장 선하고 아름답고 유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피조물이기에 지닌 한계가 있음을 명시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보다 더 큰 힘에 의해 이끌림을 받음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전제 군주처럼 모든 결정권을 휘두르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느 힘에 의해 이끌림을 받을지를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주도적으로 삶을 경영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권한을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한다면 우리에게 선한 결과를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르는 삶을 선택한 자는,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영화로운 삶을 살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반면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떠난다면,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뿌린대로 거두는 원리입니다.

모든 것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우주의 원리 안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또 그 결정의 결과를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정한 심판이며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해서라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혹시 이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하세요. “제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를 만드시고,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에게 천국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겠습니다”라고 말씀해 보세요.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삶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축복도 우리의 선택이다

시편 81편 10~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13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14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15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내 앞에서 굽실 거려도 그들의 형벌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16 내가 너희에게는 좋은 음식을 먹이고 산꿀로 너희를 만족케 하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축복을 주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입을 열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많은 복을 채워 주시기 위해 입을 넓게 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그릇을 크게 넓히고,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주시리라 기대한다면, 우리가 믿고 기대한 대로 하나님은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수많은 축복을 내려 주시지만, 그것을 얼마나 받아 누리냐는 우리의 선택이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권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강제로 당신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그 모든 선택도,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악과를 주신 이유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추구하는 대로 열매 맺고 결실하도록 온 우주 만물을 설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기 위해서 였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율성과 주도성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선악과를 준비하셨습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지, 아니면 눈에 보이는 현상대로, 사탄의 거짓말과 유혹을 따를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유와 자발성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심판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퍼펫 처럼 움직여지는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악인이 존재하는데 그들에게 심판과 처벌을 준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공의의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자신의 삶에 전적으로 책임지는 독립적인 존재로 서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 전에 하나님은 원인과 결과라는 우주의 원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선택choice은 원인 cause이고 후에 받을 심판 judgment은 결과 consequence입니다. 그 심판이 우리에게 멸망을 줄지 아니면 영광을 줄지는 우리가 내린 수많은 선택에 의해 결정됩니다.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삶은 충성심에서 나온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선택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도, 계획도, 그 계획의 동기도, 우리의 일도, 우리의 말도, 우리의 눈빛도, 우리의 표정도, 우리의 시간 사용도, 우리가 듣고 보는 것도, 우리가 먹고 입는 것도, 우리가 즐기는 여가 생활도 모두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의도적이지 않고, 그저 부모님과 사회가 주입시켜준 대로, 우리의 관행과 우리의 낡고 오래된 습관대로, 우리의 욕구대로 지속된다면 우리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 되도록 철저히 계획되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바른 방향성을 설정하고,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모든 것을 그 방향성과 목적에 맞추어야 합니다. 사명 완수를 위해 우리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선택들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교활하고 은밀한 마귀의 공격에 맞서 싸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끝까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충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는 자로 당신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6절에서 28절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창조된 존재인지, 우리가 이 땅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내졌는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영어로는 in the Image of God이라 표현됩니다. 하나님과 비슷한 모양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씀이겠지요. 그러나 생김새만 닮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무얼 통해 알 수 있지요? 26절과 28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정복하고, 창조 세계를 다스릴 지혜와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그런 엄청난 것들을 허락 하셨나요? 그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게 하려 하심 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empowerment입니다.

우리에게 다스리고 정복하는 권한을 주신 것은, 우리가 창조 세계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답고 거룩한 상태로 지키고 가꾸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권한은 우리의 편의와 우리 가족만의 이익을 챙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할 수 있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은혜 vs. 의무

어떤 이들은 구원은 은혜이기 때문에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을 과장, 확대 해석한 경우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성경 곳곳에서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이 헛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어떤 노력과 선행도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가치에 견줄 수 없습니다. 구원의 이유를 우리의 행위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값 없이 받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그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가 구원을 받는 원인입니다. 우리의 의로운 행위는 죄의 권세에서 해방 받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뿐입니다. (로마서 9:32, 10:3을 참고하십시오)

맞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받아 들이고 지키며 지속적으로 누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이유는 십자가의 은혜에 있습니다. 그러나 ‘의롭다’함 (칭의)을 받은 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금 달란트를 다섯 개, 두 개, 한 개를 받은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 전서 4: 1~2절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가 그 비밀이 무엇인지 열심히 배우지 않는다면 의무 태만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직무 유기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에서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 청지기가 그 임무를 다 하지 않았을 때 어떠한 결과에 처하게 되는지 경고하십니다. 청지기로서의 사명은 회계할 때가 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정한 기한이 있습니다.

그 기한 안에 맡겨진 달란트로 이윤을 창출한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받고, 반면에 그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꾸지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맡은 사역을 감당하지만, 동시에 그 능력에 순복하고 그 뜻을 따를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청지기적 삶에는 우리의 믿음과 인내가 동시에 요구되어 집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그 뜻에 우리의 생각과 믿음을 조율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조율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고, 성취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주신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생산성 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책임 있고 충성스러운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는 사명을 받아 이 땅에 보냄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로 이윤을 남길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잠재력과 능력, 그리고 수많은 기회들을 주셨습니다.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Mission impossible이 아니라 Mission completion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수함이 없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무지해서 깨닫지 못했거나, 아직 겸손히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어야 할 때여서 상황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잠재력과 능력을 발굴하고, 사용하고, 확장하는 것, 그래서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사명의 성취는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우리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 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의 고질적인 못된 버릇 하나 고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을 바른 길로 이끌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바른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세상을 가르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에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 이념, 세계관, 관계, 관심사, 취미, 꿈, 일, 삶의 목적과 동기, 습관까지 모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야 하며, 둘째는 우리의 삶을 그 말씀으로 다스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당신의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가려는 노력이 있으신지요?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시스템이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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