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에게 길러주는 10가지 성공 마인드 – 10. 거룩함을 이루는 사람이 되라

도처에 깔려 있는 유혹.
언제 어디서나
우리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Photo by Joshua Jung

 

 

요즘 아이들은 누리고 있는 축복이 참 많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좋은 브랜드의 옷을 입힙니다. 등골이 휘도록 무리하면서까지 자녀들에게 예체능과 국영수 등의 사교육을 시켜줍니다. 각종 박물관 견학을 비롯해 외국 여행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입히고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면 아이가 기죽지 않고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으로 잘 자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가르치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아이가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사회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뉴스를 통해 부모를 살해 한 어떤 교수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웃 여자 아이를 성폭행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2.2배가 높다고 합니다.[1] 청소년의 행복 지수는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라고 합니다.[2] 

그렇게 자녀들을 끔찍히 사랑하고, 최고의 것을 제공하고 가르쳤는데…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요? 어디서부터 그 문제가 시작된 것일까요?

 

 

미국 학교가 그 정도야…?

저희 아이들은 중고등 학생 때부터 성인들도 입에 담기 부끄러운 노골적인 성적 표현들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른 나이 때부터 이성친구를 사귑니다. 그중 많은 아이들의 이성 관계는 너무나 빠르고 쉽게 성적인 관계로 발전됩니다. 학교 화장실에서는 마리화나 또는 베이핑vaping을 하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던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학교에서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이 저한테 오럴 섹스가 더 좋은지 항문 섹스가 더 좋은지 물어봤어요.” 저는 눈이 똥그래져서 물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뭐라고 했어?” “정신 차려”라고 말했어요. 

고등학생이었던 첫째의 친한 친구 중에는 동남 아시아계 우등생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한국 여자 아이를 사귀던 그 친구는 한국어를 몇 마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OO를 빨아버려”라는 말을 하더랍니다.

미국 시골 마을에서는 길을 가다 보면 가끔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스컹크 냄새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시애틀 다운타운에 갔더니 또 그 냄새가 났습니다. “아니, 이런 도심지에도 스컹크가 산단 말이야?”하며 의아해 하던 제게 딸이 말하더군요. “엄마, 그거 마약 냄새에요.” 깜짝 놀라 딸에게 물었습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러자 중학생이던 막내가 말했습니다. “학교 가면 애들이 화장실에서 매일 마약해요.”

 

 

위험에 처한 우리의 아이들, 해결책은?

한국에는 아직 중고등 학교 안에 마약이 들어가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문제도 상당히 심각합니다. 40대가 된 동생이 아직 중학생이었을 때, 같은 반에는 원조 교제를 하면서 용돈을 버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25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은 얼마나 더 악화 되었을까요?

이렇게 우리의 아이들은 여러가지 위험과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요?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해 주면 될까요? 우등생 아이들끼리 그룹을 지어 다니게 하면 될까요? 아이가 가는 곳은 어디나 함께 가면 될까요?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의 일정을 낱낱이 관리하면 될까요?

저의 답변은 NO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을 100%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들인 노력에 비해 효율이 떨어집니다. 아이에게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고 부모가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는 아이로 만드는 것은 전혀 건강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습니다. 

우리 부모는 자녀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주체적으로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창조주의 거룩한 본성을 지닌 자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바로 세우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됩니다. 자신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로 인식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존귀함을 지키기 위한 선택들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작은 아이들에게는 크고 강한 유혹으로 느껴지는 상황들이, 건강하고 바른 정체성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롭고 사랑과 평화와 안식이 풍족한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아이들은, 이 땅에서 잠시 누리는 일탈의 쾌감이 자신에게 참된 위로와 만족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하늘의 비전을 품게 됩니다. 그들의 비전이 하나님의 그것과 일치할수록 더 크고 높은 꿈을 꾸게 됩니다. 그들의 삶은 뚜렷한 목적에 의해 매우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펼쳐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할 때, 우리의 자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일치하는, 스스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인성과 학습 능력과 친구 관계와 진로 등 모든 것이 거룩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최적화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녀들에게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과 가치를 심어 주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입니다.

 

 

소중한 우리 자녀를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작전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게 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 자녀를 어떻게 지도해야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거룩함을 지키는 삶을 살까요?

 

첫째, 부모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라는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성품을 닮도록 지음 받은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인식해야 합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왕의 자녀로서의 권세와 능력과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확신이 섰을 때, 그제서야 하나님의 자녀 됨의 의미와 가치를 우리 자녀들에게 진정성 있고 설득력 있게 전수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부모 자신의 영적 민감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거룩함을 지키는 능력을 심어주기 위해서, 부모가 먼저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민감하게 거부하고 거절하는 습관이 필요 합니다. 이 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억하고, 되새기는 매일의 헌신이 요구됩니다. 

지식이 전부가 아니지만, 정확한 지식을 갖추는 것은 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Yes 하시는 것에 Yes 하고, No 하시는 것에 No 할 수 있으면 성공입니다.

마귀는 선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를 유혹할 때, 선하고 좋은 것들을 속에 눈치 채지 못할 만큼의 작은 악을 곁들입니다. “뭐, 이렇게 상까지 받은 좋은 영화인데, 그 정도야” “예술 작품인데 뭐”라며 작은 비도덕적인 부분을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을 교묘하고 은밀하게, 매력적으로 포장해서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속입니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토크쇼, 게임, 노래, 춤, 뮤직 비디오, 영화, 클래식컬 발래… 심지어는 어린이 만화와 노래에도 선정적이고 비윤리적인 메시지를 넣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비난하며, 십자가의 구원을 부인하는 메시지들이 들어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손 사인이, 어떤 춤 동작이, 어떤 노래 가사가, 어떤 그림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유혹하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때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영적 민감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함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영적 분별력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셋째, 외부의 위험을 차단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함을 지키도록 돕기 위해서는 안전한 바운더리가 필요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어릴적부터 성, 폭력, 마약, 갱 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던 우리의 착하고 순진했던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돌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 예술 작품, 문화 상품, TV 프로그램, 게임 등을 통해 어려서부터 이런 것들을 보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성인처럼 몸이 변하고 힘이 세지면서, 사춘기 아이들은 그동안 자연스럽게 생각 속에 스며들었던 온갖 성적 표현과 폭언과 폭행을 자연스럽게 표출합니다.

그러니, 아직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이 작업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디즈니 영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화, 만화, 드라마 등에 아이들을 노출 되는 것을 최소화 하시길 권면합니다.[3] 

많은 영상들, 특히 디즈니 영화에는 어린 아이들이 성적 문란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내용이 알게 모르게 많이 들어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내용도 가미되었습니다.

서양의 할로윈 파티도 위험합니다. 사람들은 단지 외국의 전통 문화이기에 재미와 호기심으로 참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할로윈의 기원을 알게 되면 그저 재미로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할로윈의 기원을 찾아 보십시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함을 이루는 일인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교묘한 사탄의 소리로부터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한 영적 싸움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다른 소리를 한다고 할지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지라도 뚝심을 가지고 우리의 생각과 선택들을 거룩하게 지켜내는 용기가 필요 합니다.

 이 문제만은 당신이 출석하는 교회의 목회자가 관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목회자의 자녀들이 K-Pop 가수들의 섹시한 춤을 따라하며 노래한다 하더라도, 그 아이들이 할로윈 복장을 하고 trick-or-treat을 다닌다 해도 따라하지 마시길 권합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는,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거룩한 삶에 일치하는지 분별하는 작업을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이 보고 듣는 것이, 그리고 즐기는 것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함을 지키는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무언가 애매한 점이 있다면, 우선은 그 활동을 보류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안전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익한 방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 보십시오.

 

너희를 지킬 수 있다면

저를 보고 보수 꼴통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를 받아도 괜찮습니다. 제게는 아이들을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저는 원래 디즈니 영화에 대해 어떠한 반감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물론 아이들 영화라고 하기엔 좀 의아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여성의 몸매는 비현실적이라 할만큼 가슴이 확대되어 있었고, 상의는 가슴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알라딘도 그렇고 인어 공주도 그렇고, 혼인을 앞둔 사람이 약혼자가 아닌 사람과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데 디즈니는 그들의 사랑을 너무나도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 처럼 그려서, 보는 이마다 불륜이고 뭐고 따질 것 없이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하고 훌륭한 여러 고전들에도 비슷한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유투브의 어느 영상을 접했고, 디즈니의 숨겨진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에 있던 알라딘 그림책에서 그 증거를 찾게 되었습니다. 알라딘 동화책의 표지에 그려진 금빛 왕궁 정 중앙에는 실물 크기의 발기된 남자 성기가 그려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저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디즈니 영화를 보여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영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알려주기 전까지는 저도 그 그림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그림책은 크기가 상당히 컸고, 저희 집에 오랫동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세상에 누가 아이들의 동화책에 그런 그림을 그렸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불경스러운 그림이 디즈니 영화들 여기 저기에 숨겨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속도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의식이 발견하지 못한 장면이나 소리를, 우리의 무의식과 영은 간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 그런 이미지와 소리가 저장됩니다. 

그 이미지와 소리는 색욕적인 것도 있고, 자연 숭배나 다신교의 신앙을 따르는 이교도적인 것도 있습니다. 어떤 만화 영화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귀신의 정체에 대해서 귀엽고 선한 친구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알게 된 후로, 저는 저희 자녀들에게 디즈니 영화를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혼과 영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들로 채워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디즈니는 영화도 TV 방송도 시청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시어머님께도 저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들이 축제 같이 여기는 할로윈을 저희 아이들에게는 참여하지 못하게 했었는데, 이런 극단적인 규제까지 더하자, 자녀들의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융통성 없고 무자비한 엄마’라고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로윈에 참여하는 것도 디즈니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함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방어벽을 쳐 주었습니다.

 

찬물을 끼얹다

시애틀 지역으로 이사를 와 보니, 저희가 사는 동네에는 백인이 소수 인종이라고 생각이 될 만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중 한국 사람들의 비율도 꽤 됩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된 딸에게 입학과 동시에 한국 여학생 친구 그룹이 생겼습니다. 말이 통하고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엄마들끼리도 자연스럽게 카톡방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느 날 엄마들이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입시 준비로 방향이 흘러갔습니다. 당시 저의 큰 아이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알려준 대로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려면 과외 활동[4]과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장황하게 떠들었습니다. 제가 몰랐던 정보이기 때문에 혹시나 딸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순진한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자 엄마들은 우리의 딸들이 좋아 하면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활동이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K-Pop 스타들을 꽤나 좋아했습니다. 유명한 K-Pop 가수들의 노래를 외우고 춤을 근사하게 출 수 있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제 딸 친구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딸 BTS 춤 잘 춰요”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딸들을 칭찬했습니다. 삽시간에 K-Pop 댄스 클럽을 만들게 하자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통과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정색을 하며 찬물을 확 끼얹는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저희 딸을 그런 노래에 맞추어 춤추게 하고 싶지 않아요. K-Pop 댄스 클럽에 저희 딸은 안 넣겠습니다.”

 

미움 받을 수 있는 용기

세상은 성경과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용기 있고 멋진 행동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성 인권을 위해서라며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낙태를 지지합니다.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며 마리화나를 합법화 합니다. 

모두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며 동성 결혼을 합법화합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으며,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절대자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세상은 다수가 동의하고 따르는 것에 반대할 때, 그 반대의 목소리를 쉽게 정죄하고 비난합니다. 유별나게 행동하는 별종이라며 따돌리기도 합니다. 과학적인 근거를 조작해서라도 반대의 목소리를 묵살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 도전이 됩니다. 그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가까운 사람과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논쟁과 갈등의 시간이 고통스럽습니다. 오해의 시선을 견뎌 내는 것이 힘겹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진리와 절대 사랑이 있음을 믿습니다. 절대자의 주권과 통치를 믿습니다. 그분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흔들리지 않는 진리에서 우리의 삶의 이유와 가치를 발견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나 다움’을 발견합니다. 진짜 안식과 자유를 찾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 마음의 동기, 말, 행동, 지식, 지혜, 경험, 관계, 일 등은 우리의 거룩함을 이루어 가기 위한 도구이며 방법임을 깨닫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도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성결함을 지키는 이 모든 행동은 모두 우리가 영원한 안식과 영광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정체성 대로 살아갈 때,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악의 권세는 하나님의 형상된 우리의 정체성을 망가뜨리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내부의 위험을 차단하는 것은 아이들의 거룩함을 지켜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것이 외부의 위험을 차단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내부의 위험은 바로 우리 부모들의 경건하지 않은 말과 행동입니다. 폭력적인 언행입니다. 아이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자존감을 망가 뜨리는 말과 표정입니다. 타인을 탓하고 비난하는 말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불경건한 말을 듣고, 행동을 보면서 그것을 내면화 합니다.

아이들은 들어서 배우기 보다는 보고 배웁니다. 그래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말 한대로 살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이것 저것 요구하는 부모를 존경하지 못합니다. 

그런 부모는 자녀들에게 권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권위가 있는 존재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신에게 권위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권위는 권위 주의와 다릅니다. 권위 주의는 스스로의 우월성을 주장 하면서 자신의 지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반면 권위는 스스로 덕을 세움으로서 타인에게 영향력을 인정 받는 것입니다.[5] 

권위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경건하고 거룩한 삶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덕을 세우고, 가정 밖의 공동체에서도 일관된 언행으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자녀들이 옆에서 지켜보면 강력한 파급 효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어려워 했던 것, 매번 실패 하던 것,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 했던 것을 부모가 해 낼 때,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과 도전 정신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부모를 따라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아이에게 권위 있는 부모가 되면, 자녀를 위해 바운더리를 세워주는 것이 효과가 있어집니다. 이 울타리는 아이의 안전과 건강과 행복과 거룩함을 지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이를 부모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과 다른 의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가 떼를 쓰고 원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바운더리는 타협하지 않고 지켜야 할 견고한 울타리이어야 합니다.

권위가 세워지면, 아이들은 부모에 대해 존경심을 갖습니다. 부모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할 일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들에게 더 큰 행복을 안겨다 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확고한 권위는 자녀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이 안정감은 온갖 성적인 타락과 방종과 일탈에서 우리의 자녀들을 보호해 줍니다. 그런 유혹에 어떤 흥미나 관심이 생기지 않지 때문입니다.

 

다섯째, 전능자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 악이 존재합니다. 우리 각자도 죄로 인해 깨어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자녀들에게 그릇된 것을 가르치거나 경건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결과를 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호소해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어도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막아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큰 아이가 이미 너무 커버린 상태에서, 뒤 늦게 저의 변혁을 시작했어도, 그 아이가 치유되고 저와 함께 성장하도록 도우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아픔과 어려움들을 겪으셨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몸소 경험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더욱 이해 하시는 분이십니다.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겸손히 당신을 의지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6]

 

 

백날 해봐야 소용 없는 기도 VS 응답 받는 기도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우리의 소원을 아뢸 때에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와 확고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와 문제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전능한 해결사이심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것을 믿을 때, 비로서 우리는 소망이 생깁니다.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생깁니다. 인내하며 끝까지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강단이 생깁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기도는 “믿습니다”라고 하지만 생각으로는 “진짜 들어 주실까?” “애들 상태를 좀 봐라.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 주시겠어?”라고 의심하고 있다면, 우리의 기도는 헛것이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기도와 일치하도록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의심하는 사람들을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더 끔찍한 것은, 그런 기도는 백날 해봐야 응답을 못 받는다고 말합니다.[7] 입술로는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 실제 생활 속에서는 의심과 불평의 말이 쏟아진다면 당신은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자녀들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자녀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 본다면, 당신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하는 말들이 일치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은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인 의사 소통의 모든 표현 방식을 포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귀에 들린대로” 우리에게 실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8]

 

사실 기대하지 않았던 도전들이 닥치고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면, 우리는 또 다시 믿음이 연약해 집니다. 불신과 의심의 생각들이 몰려 옵니다. 마음이 불안해 집니다. 

그런데, 이 때가 우리의 믿음을 보일 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 혼란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항상 생각하며 집중하는 그것에 있습니다.

문제들에 우리의 눈과 귀를 빼앗기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그 상황을 재생해 보고, 앞으로 예상되는 더 큰 문제들을 걱정하면 이것은 이미 진 게임입니다. 당신이 지속적으로 상상하고 생각하는 그것이 당신의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크고 강하신 팔로 우리를 지금까지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를 생각하고 감사하면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속에 질서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시고, 통치해 오셨다는 것을 깊이 묵상하면 희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성실하신 성품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면 기대감이 생깁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게 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싸울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아야할 중요한 사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을 위한 당신의 기도의 동기입니다. “내가 이렇게 잘 키웠다”고 ‘나’를 내세우고 싶어서는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떵떵거리며 살려는 속 마음을 감추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아니면 정말,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의 순결함을 전수하려는 충성되고 진실한 사랑의 마음에서 입니까?

당신의 기도가 이루어 지지 않더라도, 당신은 끝까지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선포하며, 그분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한 진정한 충심과 사랑이 기도의 동기라면 당신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상황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사랑이 당신의 마음을 지킬 것입니다. 당신은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과 동기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믿는 그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실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동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조율될 때, 구하는 대로 응답 받을 수 있습니다.[9]

 

 

결론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에서 거룩함을 지키는 것은 치열한 영적 싸움입니다. 그 싸움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우리는 누구인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자주 반복적으로 읽으시면 이러한 진리들을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 안에 심겨진 거룩함을 지키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거룩함을 이룰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최고의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 자신이 먼저 영적으로 깨어있을 때, 아이들에게 그 싸움을 승리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말씀과 기도로 영적 무장을 하고, 영적 싸움터인 일상의 삶에서 승리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 있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영적 민감성을 기르게 됩니다. 절대 진리를 거부하는 세상에서 담대히 절대자를 붙들며 거룩함을 추구하는 선택들을 내리게 됩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헷갈리지 않게 부모로서 명확한 기준선을 제시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Yes는 Yes, No는 No라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중 메시지는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신뢰를 앗아가며, 부모로서의 권위를 깎아 내리게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도 이중 메시지 입니다. 의심하며 기도하는 것도 이중 메시지 입니다. 이중 메시지는 자녀들에게도 그렇지만 하나님께도 먹히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과 영원한 것을 동시에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 아닌 거룩함을 품고 그 중심을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축복이 큽니다.

많은 부모들이 ‘좋은 학교에 보내면, 교회에 보내면 알아서 잘 자라겠지’라며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있습니다. 마귀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그러나 아름답고 선하고 온순한 양처럼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과 귀와 생각을 흐려 놓습니다. 

지금은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해 깨어 나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의 삶을 회복하고 지켜내는 믿음의 용사들로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기준을 붙들고 중심을 지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고결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의 어떤 부분에서 거룩함을 회복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그 일을 어떻게 이루어 가실 것입니까?

 

 

 

 

[1] https://www.ytn.co.kr/_ln/0103_202206150607231774

[2] “통계청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8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작년 12~14세 청소년 자살률은 10만 명당 5명으로 역대 최대치다. 10대 자살·자해 시도는 3년간 69% 급증했고, 청소년 우울증 진료는 2년 새 19% 늘었다.”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3020337771

[3] 외국 만화나 영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문화 생활을 하게 해 준다는 이유도, 또는 영어를 쉽게 가르치겠다는 이유도 그리 설득력 있는 핑계는 되지 않습니다. JEBS (젭스 정철 영어 성경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얼마든지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바른 세계관 안에서 안전한 영어 교육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4] 보통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과외가 아니라, 학교 정식 학사과정 외에 하는 활동입니다.

[5] 우리는 때때로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한다. 이런 혼동은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되지만, 나아가서는 잘못된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작용도 한다. 그러니 권위와 권위주의는 반드시 구분되어져야 한다. ‘권위’는 사전적 의미로 사회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말한다. ‘권위주의’는 어떤 일에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복종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출처 시니어매일(http://www.seniormaeil.com) http://www.senior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854

[6]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 (역대하 16:9 KRV)

[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1: 6~8 KRV)

[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수기 14:28 KRV)

[9]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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