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2024 굳이 글쓰기. 서른한 번째
오늘은 저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것이 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중에게 숨겨진 비밀
정체성은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갖고 있는 엄청난 힘을 깨닫게 될 때, 세상의 기존 질서가 흔들릴 것을 아는 기득권자들에 의해서 일반인들은 깨닫지 못하도록 숨겨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뜩 해봅니다. 너무 음모론 같은가요?
세상 모든 것을 다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정체성이 바르지 않다면 가장 위험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추종자도 될 수 있죠. 히틀러가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이며, ‘이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답고 조화롭게 지켜야 할 임무를 지닌 존재’라는 정체성이 있었다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체성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며 이해하는 틀의 토대가 됩니다. 정체성은 우리가 형성하는 세계관의 원칙을 제공합니다. 우리의 신념과 믿음이 이 정체성에서 기인합니다. 아무리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게 해석됩니다.
우리의 가치관도 어떤 정체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의 꿈과 목표, 의사 결정과 선택, 습관, 인성과 인격과 인품의 발달, 언어와 행동, 대인 관계와 소속된 공동체, 인지적 지능과 감정적 지능의 발달, 경제적 능력과 재정 상태, 육체/정신/정서/영혼의 건강까지 모두 결정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내 정체성의 변화와 그 여파
정체성이 이렇게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성경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수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규율과 그에 따른 처벌이나 보상,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만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 눈물 흘리며 회개했지만, 많은 경우 제 안에 쌓인 죄성으로 인해 좌절했을 뿐, ‘변화된 삶’으로 맺는 ‘회개의 열매’는 그리 많이 거두지 못했습니다. 제가 너무나 연약하고 악한 존재라는 증거에 점점 더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창조하실 때, 제게 심어주신 선하고 거룩한 본성에 대해서 오랜 세월 동안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아 나셔서, 저의 뿌리 깊은 죄성을 이길 능력을 회복시키셨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쳇바퀴 도는 삶이었지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저는 ‘별것 아닌 존재’였습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저는 그 당시 교회에서 중고등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는 다윗이 쓴 시편의 말씀을 읽고 감명을 받았고,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그 시에서 다윗은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속에 있으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생각이 너무나 많고 깊어,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139). 특히 아래의 구절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I praise you because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your works are wonderful, I know that full well.” 이 문구의 한글 번역은 이렇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편 139:14 KRV) 아쉽게도 한글 번역이 영어 번역의 그 엄청난 의미를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방점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에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하게 만들어진 존재인지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두 번째 이유는 your works are wonderful 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방점은 ‘나’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완벽하고 뛰어난 이유를 하나님에게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뛰어남도, 그 뛰어난 작품을 만드신 하나님의 위대하심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함께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얘들아, 너희가 바로 이렇게 가치 있는 존재야. 너희는 존귀하고, 아름답고,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향해서는 “네가 뭘 그런 존재야?”라고 질문하고 있었죠. 그러니 아이들에게 제 말이 얼마나 미덥지 못했을까요?
제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겸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존감이 너무 낮아져서 스스로에 대해 자조 섞인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 낮은 자존감은 저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고, 선택의 폭을 좁혔으며, 저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판단과, 선택과, 행동의 기저에 깔린 동기는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인정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 갈등과 가난이 지속되는 어두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낮은 자존감에 두려움까지 덮이니, 저는 가장 사랑하고 아껴야 할 저 자신과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강요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과도 가족들과도 갈등이 늘어갔습니다. 저 자신을 온전히 좋아하지도, 존중하지도 못하니, 타인을 온전히 사랑하지도, 존중하지도 못하더군요. 하나님과의 관계도 어그러져 갔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에 자신감도 없고, 제가 만들어 내는 가치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저의 능력에 대해서 누군가로부터 ‘잘하고 있다’고, ‘너는 그럴 능력이 있다’고 끊임없이 확인받아야 했습니다. 반면,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을 받으면 우쭐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자기 계발을 하면서, 잃어버린 저의 참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저에 대한 거짓 믿음 (또는 거짓 자아) Limiting Belief을 버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저를 누구라 부르시는지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 말씀들을 저널에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얼마나 존귀하고, 보배롭고, 가치 있고, 아름답게 생각하시던지요!
저는 너무나 소중해서, 하나님 자신께서 저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으신 존재였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저의 가치를 대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긍정 확언을 만들었고, 저의 육성으로 녹음해 끊임없이 저 자신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너는 부족해.’ ‘너는 머리가 너무 나빠.’ ‘너는 언제까지나 가난할 거야.’ ‘너는 패배자야.’ 너는 바보야.’ ‘너는 가능성이 없어.’ ‘너는 이미 틀렸어.’ ‘너는 흙수저야.’ ‘너는 성공에 필요한 자질도, 자원도 너무 없어.’ ‘너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 ‘네가 인정받으려면 무언가 계속, 열심히 노력해야 해.’ ‘너는 너무 약해. 저질 체력이야……’
그 수 많은 거짓말들… 그 수 많은 눈초리와 표정들…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이 저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려 해도, 저는 차차 그것들을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렇게 병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 병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의 아이들에게 그리 했듯이 말입니다.
저는 세상이 뭐라고 해도, 존재 자체로서,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합니다. 저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인해,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로 인해 당신의 가치를 혹여나 평가절하하는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그 엄청난 가치와 존엄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저의 정체성이 변화되면서, 저는 제가 하는 일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고,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비록 지금은 그 결과물이 작다 하더라도,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담대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비교와 평가에서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일에 확신을 갖고 몰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되찾은 나의 정체성과 존재감
저는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딸’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며,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라는 사실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제가 도로 찾은 정체성입니다. 저는 원래 그렇게 창조된 존재니까요.
저는 저를 지으신 분을 닮아 창조력, 지혜, 지식, 인내, 사랑, 긍휼, 이해심, 능력, 힘, 권위, 성실함, 도덕성, 이타성, 공감 능력, 선함, 공평함, 공정함, 정직, 충성심, 감사, 기쁨 등 모든 좋은 것에 탁월합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품과 지혜와 능력과 영광이 저를 통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저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저는 모든 좋은 것이 풍성하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고백하며, 보이는 상황이 아무리 암울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다 볼 수 없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를 위해 일하시는 아버지가 계심을,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상기했습니다. 제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제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저를 위해 일하시는 아버지가 계심을 고백했습니다.
저는 가장 위대한 신께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랑하신 존재라는 사실이 저에게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제가 저의 정체성을 잊고, 다시 부족하고 죄에 매인 옛 모습을 찾아갈 때도, 하나님은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시고, 이해하시며, 저의 모든 것을 끌어안아 온전히 사랑하신다는 것이 저에게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완벽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최상의 선물과, 기회와, 기적을 경험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렇게 전능자의 뜨거운 지지와 총애를 받는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저는 그분이 주시는 모든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 지혜롭고 선하게 사용합니다. 그분을 닮아 모든 좋은 성품과 지혜와 능력과 권위에 탁월하며,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항상 기뻐하며, 저의 눈빛은 서로를 향한 존경이, 저의 얼굴에는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합니다. 저는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이런 존재입니다. 당신도 처음부터 이렇게 코딩이 되었으니까요.[1]
사실 우리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지, 아닐지에 따라서 자신이 믿고 있는 자아의 정체성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닮아 아름답고, 선하고, 거룩하고, 지혜롭고, 많은 능력에 탁월하고, 사랑이 풍부하고, 창조력이 뛰어나게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아름답고 선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죠.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섬기는 세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로봇처럼, 하나님께서 입력하신 그대로 우리가 생각하고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인격을 주셨고,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고,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에 맞는 결과를 얻도록 하셨지요. 우리의 자유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도 우리가 선택했고, 그 결과를 우리가 현재 거두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건강하고 바르며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찾는 방법과, 정체성을 되찾을 때 일어나는 변화에 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1] 단지 우리가 현재 이런 모습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사회, 직장 상사나 동료, 매스컴 등의 잘못된 메시지에 의해서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잃어 갔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 스스로가 그런 파괴적인 선택을 내리기도 했고요.